"일용직 쓰는 기업엔 다 있다"…쿠팡 유혹하는 '블랙리스트'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쿠팡이 최근 자사 취업금지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추정되는 명단을 작성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과거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인물들의 신상정보와 함께 '정상적인 업무수행 불가능', '건강 문제', '직장 내 성희롱', '반복적인 무단결근' 등 블랙리스트 등록 사유가 적혀 있는 엑셀 파일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지부 쿠팡지회와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쿠팡풀필먼트에서 일했던 노동자 등 1만6450명의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담긴 엑셀 파일을 일부 공개했다.
"일용직 쓰는 유통·물류 기업이라면 블랙리스트 다 있어"
노조는 쿠팡의 블랙리스트 작성이 근로기준법 40조와 개인정보보호법 18조 위반이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근로기준법 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노조는 취업 지원자와 퇴직자의 개인정보를 근로계약 체결·이행이 아닌 취업 배제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도 주장한다.
이에 대해 쿠팡은 직원에 대한 인사평가는 회사의 고유권한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업장 내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인 사규 위반 등의 행위 일삼는 사람들로부터 직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이다.
주로 퇴직자의 동종업계 취업을 막는 기업의 행태를 규제하기 위해 입법된 근로기준법 40조는 현장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용직을 사용해 물류창고를 운영하는 유통·물류업체에서 주로 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신선식품 배송업을 운영하는 마켓컬리도 지난 2021년 약 500여명의 일용직 구직자들의 성명과 전화번호, 생년월일이 기재된 블랙리스트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용노동부가 기소 의견 송치했지만 지난해 6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유통·물류업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인력 관리가 어려운 플랫폼 일자리의 ‘일용직 채용’ 시스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류업체의 일용직 일자리는 과거 공사 현장 일용직과 비슷한 구조다. 그때그때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 들어와서 원하는 만큼 일하는 시스템이다. 사실상 거의 완전히 개방된 인력시장이라 체계화된 채용·인사 검증 절차가 없다.
한 인력 중개 시장 관계자는 “건설 현장은 위험·공동 작업이 많은 탓에 상대적으로 체계화돼 있어 근로자들끼리 서로 관리·감독이 되는 면이 있다"며 “이에 비해 일용직 플랫폼 일자리는 채용 시에도 별다른 검증이 안 되는 데다, 작업 과정도 조직화하지 않은 단순 업무가 많아 소속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동 시장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아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다 보니 내부에서 다양한 불법 사례도 적발된다.
쿠팡 풀필먼트 센터에서 근무했던 A씨는 "배송 상품인 신발을 뜯어 본인이 신고 퇴근하거나 소형 전자제품을 허리춤에 끼고 나가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며 "오래 일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절도, 폭행은 물론이고 말하기 민망한 성적 문제가 발생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2년에는 수원지법이 절도와 특수절도, 특수절도 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쿠팡 물류센터 출고팀 직원 3명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경기도 화성시의 물류센터 출고팀에 근무하던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아이폰 132개(1억3000여만원 상당)를 훔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제는 부정행위가 적발된 물류센터 직원들의 신분이 대부분 '일용직'인만큼 형사 고소 외에 별다른 징계를 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한 노무사는 "징계란 고용이 계속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플랫폼이나 일용직 근로자는 근로계약 기간이 하루 단위라 징계 수단이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블랙리스트는 플랫폼 업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인력업체 관계자는 "블랙리스트는 반복된 범법 행위에 다시 당하기 싫은 플랫폼 기업들이 만든 일종의 보호 장치"라며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블랙리스트를 암암리에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위법 여부 두고 '논란'
쿠팡의 명단 작성을 두고 위법 논란도 팽팽하다.
근로기준법 제40조 위반이 성립되려면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이 요구된다. 이 조항은 다른 사업장 취업을 제한했을 때 적용되고, 자신의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기소 처분을 받은 마켓컬리가 고용노동부 수사 당시 주장했던 취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쿠팡이 운영 중인 다른 모든 센터에서도 일할 수 없게 전체적으로 자료를 공유했거나, 인력 공급업체 등에 제공했다면 취업 방해 목적이 인정돼 위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만약 쿠팡이 블랙리스트를 인력 공급업체에 제공했고, 이 공급업체가 쿠팡 외의 다른 물류센터에도 인력을 공급하는 곳이라면 쿠팡의 블랙리스트가 사실상 다른 기업에 대한 취업 길도 막아버린 셈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마켓컬리와 달리 근로기준법 40조 위반 혐의가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해당 조항을 과도하게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취업방해는 같은 업계에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해당 인원이 다른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막는 경우에 적용돼야지, 한 기업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사한 직원을 재채용하지 않기 위해 관련 정보를 보관한다고 해 취업방해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하나의 기업에 여러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고 각 사업장에서 채용하고 있을 경우 징계 해고된 자의 재채용을 막기 위해 기업 내부 인사부서에서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를 법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취업방해 금지 조항이 일본에 비해 지나치게 적용 범위가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경우 '사용자'가 '제3자와 공모'해서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자사가 아닌 타사에 대한 취업 방해가 처벌 대상인 것을 비교적 명확하게 했다는 평가다. 반면, 한국의 경우 ‘누구든지’ 방해해서는 안되고 제3자와 공모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취업방해가 인정되기 쉽다는 뜻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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