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200t씩 역대 최대 ‘천연수소 우물’ 발견…이제 시작일 수도

곽노필 기자 2024. 2. 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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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크롬광산 땅속 1km 지점서 찾아
“비슷한 암석 노두 무수히 많아”…탐사 확대
알바니아 크롬공산 지하 갱도의 물 웅덩이에서 천연수소 기포가 올라오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F-V. Donzé)

수소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현재 수소를 얻는 대부분의 방법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공정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론 ‘무늬만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자연 속에 묻혀 있는 천연수소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지난해 5월 옛 탄광지대인 로렌 지역에서 4600만톤 규모의 천연수소(화이트수소) 매장 후보지를 발견했고, 미국에선 천연수소 추출 기술 연구에 정부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전 세계 수소 소비량은 연간 1억톤이다.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와 알바니아 과학자들이 알바니아 광산지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천연수소 샘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알바니아 북동부 불키저 지역에 있는 이 광산은 세계 최대 크롬광산 가운데 하나로, 오피올라이트라는 암석지대에 있다. 오피올라이트는 해양 암석의 지각판이 해수면 위로 밀려 올라오면서 생성된다. 알바니아의 오피올라이트 암석지대는 수천만년 전 아프리카판이 유럽판과 충돌할 때 밀려올라온 것이다. 총길이 3000km에 이르는 이 암석지대는 터키에서 슬로베니아까지 이어져 있다.

오피올라이트에는 상부 맨틀에서 유래한 철분이 풍부한 암석(감람석)이 포함돼 있다. 이 암석이 고온, 고압에서 물과 반응하면 사문석이 만들어지면서 상당한 양의 수소가 발생한다. 철이 물 분자로부터 산소 원자를 빼앗고 수소를 방출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알바니아 크롬광산 갱도를 탐사하고 있다. F-V. Donzé 제공

순도 84%의 천연수소…연간 200톤 방출

연구진에 따르면 이 광산에서는 이미 1992년 이후 3차례나 수소 가스에 의한 대형 폭발이 일어난 바 있다. 연구진은 광산에서 물의 흐름을 추적한 끝에 땅속 약 1km 지점에서 30㎡ 크기의 물웅덩이를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로랑 트루셰 그르노블알프스대 교수(지구화학)는 물 웅덩이로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체를 분석한 결과, 수소 함유 비율이 84%나 되는 매우 순수한 천연수소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물웅덩이 하나에서 방출되는 수소만 해도 연간 11톤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이 다른 갱도와 동굴에서 채집한 기체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이 광산으로 흘러나오는 천연수소는 연간 200톤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이는 지금까지 보고된 천연수소 방출량 가운데 최고치다.

미 스탠퍼드대 야시 마투르 대학원생(에너지과학)은 사이언스에 “이는 오만 등 다른 지역의 오피올라이트에서 측정된 것보다 약 1000배 더 많은 양”이라고 말했다.

알바니아 바트라계곡에서 본 오피올라이트 암석지대. 크롬광산도 보인다. L. Truche 제공

그러나 수소 방출량이 많다는 것이 매장량이 많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광산 아래에 저장돼 있는 수소 총량은 기대만큼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연구진은 광산 갱도가 수소 가스를 저장하고 있는 단층대에 구멍을 내면서 수소 배출이 시작됐을 것으로 본다. 연구진은 이 지역 단층대의 규모에 비춰볼 때 저장된 수소 총량은 5천~5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상업적으로 개발하기에는 적은 양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고등연구계획국(ARPA-E)으로부터 천연수소 보조금을 받으려면 추정 매장량이 1천만톤 이상이어야 한다.

사이언스는 그러나 “경제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지구 자체가 청정연료의 샘일 수 있다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천연수소 분야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이번 발견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연구진은 알바니아 광산의 천연수소는 현지 에너지원으로는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천연수소 찾을 수도

이번 발견은 오피올라이트가 천연수소를 찾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는 걸 확인해준다. 미국 매사추세츠 우주홀해양연구소(WHOI)의 프리더 클라인 박사(해양화학 및 지구화학)는 사이언스에 “전 세계적으로 오피올라이트 같은 암석 노두는 무수히 많다”며 “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할 일은 이런 곳을 하나하나씩 살펴보고, 그런 다음 채굴 가능한 양의 수소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틴 텍사스대의 마이클 웨버 연구원(에너지 시스템)은 “이번 발견은 수소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걸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와 가스가 없는 곳에 천연 수소가 있다는 점에서 (석유 중심의) 지정학을 좋은 방향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선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하이테라(Hyterra)와 미국의 천연수소에너지(Natural Hydrogen Energy)가 네브래스카와 캔자스에서 천연수소를 시추하고 있다. 덴버에 본사를 둔 콜로마란 회사는 지난해 7월 빌 게이츠가 설립한 에너지 벤처캐피탈 브레이크스루 에너지(Breakthrough Energy) 등으로부터 9100만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최근 캥거루섬과 요크반도, 에어반도 지역에서 천연수소 채굴 기업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이 지역에선 과거 석유 시추 때 수소 가스가 나온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자원채굴법에 수소가 추가된 이후, 4개 회사가 천연수소 탐사 허가를 신청했다. 스페인에선 2028년 생산을 목표로 피레네산맥에서 천연수소를 추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천연수소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수백개에 이른다. 연구진은 “천연 수소가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 아니면 틈새 시장에 대한 호기심 정도에 그칠 것인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DOI: 10.1126/science.adk9099

A deep reservoir for hydrogen drives intense degassing in the Bulqizë ophiolite.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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