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연합정당, 진보정당운동의 갈림길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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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선거제 유지로 당론을 정하면서 진보정당들에 비례연합정당 결성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에 따르면, 진보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명부 앞 순번에 배정돼 쉽게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선택한 진보정당들은 더불어민주당과 항시적 연합을 맺는 소수정당의 위상을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파로 통합되어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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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선거제 유지로 당론을 정하면서 진보정당들에 비례연합정당 결성을 제안했다. 궁색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례연합정당은 결국 4년 전 비례위성정당의 재판이다. 이번에도 이유는, 국민의힘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제 개혁 취지인 비례성 보장을 무력화할 테니 ‘민주진보진영’도 하나로 뭉쳐 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들 가운데 진보당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녹색당과 정의당이 함께 만든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녹색정의당이 고민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따라 비례연합정당이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방향과 내용대로 성사될지 결정될 것이다.
사실 당장 실리만 놓고 보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에 따르면, 진보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명부 앞 순번에 배정돼 쉽게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 봐야 여전히 진보정당들이 받는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는 의석수지만, 적어도 이번 국회에서 차지했던 의석보다는 좀 더 많은 의석을 보장받게 된다. 총선을 앞두고 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정당들에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그중 첫째는 양당 독점 정치 혁파라는 선거제 개혁 취지와 비례위성정당 꼼수의 충돌이지만, 이것 말고도 진보정당운동의 운명을 좌우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들은 총선에서 늘 정당투표를 통해 지지층을 형성해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여러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한 2012년 총선에서도 정당투표용지에는 민주통합당 말고 다른 선택지들이 살아 있었다. 반면에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이 대부분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면, 정당투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리버럴정당 왼쪽의 선택지들이 사실상 사라지는 꼴이 된다.
이렇게 총선을 치른다면, 한편으로는 진보정당들이 거대 양당 중 한쪽에 의지해 생존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지지층의 구심력이 더욱 와해될 것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지방선거가, 다시 1년 뒤에는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의존과 독자 지지층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인 정당이 잇단 선거의 압박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안 봐도 뻔하다.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선택한 진보정당들은 더불어민주당과 항시적 연합을 맺는 소수정당의 위상을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파로 통합되어갈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진보정당운동의 목적이 리버럴정당을 왼쪽에서 압박하는 것이었다면, 이런 선택도 크게 잘못됐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이게 목적이었다면, 독자 진보정당을 포기하고 더불어민주당 내 ‘진보’파가 되는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하며 품었던 뜻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보수정당과 리버럴정당의 대의기구 독점을 통해 시민사회와 구조적으로 괴리돼온 제6공화국 정치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 뜻이었다. 진보정당들은 아직도 이 뜻을 실현할 구체적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비례연합정당 참여가 이런 노력 자체의 최종적 포기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따라서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둘러싼 토론에서 진보정당들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은 단지 총선 방침만이 아니다. 진보정당운동의 존폐 여부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 점을 명철히 인식하며 결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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