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담당 기자로 산다는 것

전종휘 기자 2024. 2. 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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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시시포스’(Sisyphus), 1548~1549, 캔버스에 유화, 237×216㎝,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뉴스룸에서] 전종휘 | 사회정책부장

단 하나의 팩트라도 더 찾기 위해 취재 현장을 분주히 누비는 후배들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시시포스의 운명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언론은 사회현상을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보여줘야 하고 그러려면 그 진실을 구성하는 팩트를 다방면으로 찾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진짜 진실인지 확신하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과정에 다가가려 취재원한테 묻고 또 묻는 기자들의 모습이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미움을 받아 영원히 바윗덩어리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서다. 후배들을 위로하는 의미도 담겼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기자가 짊어져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정책 분야 기자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벽은 또 있다. 어려운 법률 개념과 난해한 용어의 숲에서 헤매지 않고 이를 잘 돌파한 뒤 독자한테 정확한 문맥을 전달하는 일이다. 자신이 기사에 쓰고 있는 단어들의 조합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꿰지 않으면 자칫 잘못된 사실을 진실인 양 전달하거나 여론을 호도하기 쉽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분야를 담당하는 중앙행정부처가 관장하는 법률만 해도 보통 수십개에 이른다. 이를테면 고용노동부가 주무부처로서 관할하는 법률은 무려 41개다. 그 가운데 개별적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과 집단적 노사관계를 관장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법의 뿌리에 해당하는데, 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법률 용어도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대표적으로 잘못 알기 쉬운 게 노조법의 ‘부당노동행위’란 단어다. 흔히 사용자가 노동자한테 부당한 일을 시킨 경우에 쓰는 말로 안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이던 2021년 7월 문제의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뒤 야권의 비판이 쏟아지자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저는 검사로 일하면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 근로자를 보호하려 힘썼다. 당연하게도, 부당노동행위를 허용하자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용례가 틀렸다. 노조법에서 얘기하는 부당노동행위란,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배하거나 개입할 목적으로 노조나 노조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사용자가 근로시간 등 단순히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때 쓰는 말이 아니란 얘기다. 27년 검사 생활을 하고 검찰총장까지 거친 이도 헷갈릴 정도면, 일반인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노조법에 나오는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또 어떤가. 처음 듣는 이는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노동조합 전임자가 회사 일 대신 노조 활동을 하더라도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도록 보장하는 활동 시간을 뜻하는 말인데, 외래어로는 ‘타임오프’라고도 한다. 한겨레는 이를 ‘노조 전임자 유급 활동시간’ 등으로 표현한다. 이마저도 온전히 제도의 뜻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여기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온갖 제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바닥에서 1∼2년 정도 뛰어선 ‘괜찮은 정책기자’란 소리를 듣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책담당 기자를 하는 데 따르는 보람 또한 작지 않다. 난수표 같은 용어와 제도를 알기 쉽게 풀어 독자한테 전달하는 기쁨이다. 연장근로와 연차휴가 수당을 계산할 때 모수가 되는 통상임금과 퇴직급여 정산 때 토대가 되는 평균임금의 차이에 대해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고, 이런 과정을 거쳐 접근이 어려운 제도의 틈바구니에서 독자가 소외되지 않게끔 하는 게 정책담당 기자의 소명일 터이다. 기자는 이 둘을 중개하는 통역가이자 번역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부터 국민연금 개혁, 근로시간 개편과 노동 유연화, 대학 무전공 입학 확대, 올해 2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에서 저녁 8시까지 아동을 돌봐주는 늘봄학교 정책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책 뉴스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진다. 한겨레 정책담당 기자들도 발바닥에 땀 나게 뛴다. 언젠간 이 돌을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릴 수 있을 것이란 시시포스의 믿음을 갖고서.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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