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선, 장군 출신 프라보워·조코위 장남 승리 ‘유력’

김서영 기자 2024. 2. 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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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선 후보가 14일(현지시간) 서부자바 보고르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후 자신의 기호 2번을 뜻하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권자 2억500만명의 뜨거운 열기 속에14일(현지시간)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현 국방부 장관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니켈·야자유 같은 천연자원, 동남아 지역에서 외교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대선은 미국과 중국에도 큰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선거다. 수비안토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장남이라는 점에서 조코위의 ‘정치 왕조’ 구축이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자카르타포스트에 따르면, 이날 여론조사 기관 CSIS·사이러스 네트워크가 진행한 ‘빠른 개표’에서 오후 8시50분 기준 기호 2번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와 기브란 라카부밍 부통령 후보가 58.49%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전에 실시된 막판 여론조사 결과(49~51%)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당선 요건 중 하나인 ‘과반 득표’를 무난히 넘는 모양새다.

반면 기호 1번 아니스 바스웨단 후보와 무하이민 이스칸다르 부통령 후보는 24.85%, 기호 3번 간자르 프라노워 후보와 마흐푸드 엠데 부통령 후보는 16.66%에 그쳤다.

‘빠른 개표’는 총선거관리위원회(KPU)의 위탁을 받은 여론조사 기관이 전국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 샘플을 수거해 분석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출구 조사와는 달리 실제로 행사된 표를 기반으로 한다.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국토가 방대해 전체 개표까지 최장 한달이 걸리는 만큼 선거 결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다. AP통신에 따르면 2004년 이래 인도네시아에서 치러진 4차례 대선에서 빠른 개표 결과와 최종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로써 프라보워 후보가 결선 투표 없이 최종 당선자가 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승리가 유력해지자 프라보워 후보는 자카르타 중부 스나얀의 체육관에서 그를 기다리던 지지자들 앞에 나타나 “‘빠른 개표’ 결과 과반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승리는 모든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승리”라고 말했다.

정식 결과는 늦어도 다음달 20일까지 발표될 예정이다. 이때 프라보워 후보가 전체 유권자의 50% 이상을 득표하고 동시에 각 주에서 20% 이상을 득표한 것으로 확인되면 최종 당선자가 된다. 만약 조건을 충족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오는 6월 1·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친근한 할아버지·독재 시대의 그늘…프라보워 수비안토는 누구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후보가 14일(현지시간) 대선 개표가 시작된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신화 속 동물 ‘가루다’와 자신을 함께 그린 그림이다. 프라보워 인스타그램 갈무리

당선이 유력한 프라보워 후보는 특수부대 사령관 출신으로, 현 조코 위도도(조코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72세로 대선 후보 중에는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친근함을 강조하며 ‘껴안고 싶은 할아버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인도네시아 유권자 절반 가량이 청년층임을 감안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을 활발하게 이용하며 공략한 덕분이다.

동시에 그는 인도네시아의 어두운 현대사와 직접적으로 맞물린 인물이기도 하다. 프라보워 후보는 30년 넘게 독재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였다. 수하르토 정권에서 그의 아버지는 경제장관이었고 후보 자신도 군부 실세였을 만큼, 독재 시절의 명문가 출신이다.

인권 탄압 의혹 역시 프라보워 후보를 붙들고 있다. 그는 1998년 수하르토 독재 정권에 반대한 인사들을 납치하고 고문했다는 혐의로 불명예 제대했다. 당시 납치된 활동가 22명 중 13명이 아직도 실종 상태다. 프라보워 후보는 이 일로 직접 재판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의 수하 중 일부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밖에 그는 파푸아와 동티모르의 인권 탄압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있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미국은 2000년 그가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의 졸업식 참석을 위해 신청한 비자를 거부하기도 했다.

프라보워 후보는 수하르토 몰락 이후 한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 다시 정치에 뛰어들어 2014년과 2019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조코위 대통령에게 모두 패배했다. 조코위 대통령이 통합을 위해 그에게 국방장관직을 제안했고, 이번에 조코위 대통령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이 부통령 후보로 그와 함께 뛰면서 프라보워 후보는 ‘조코위의 정적’이 아닌 ‘조코위 유산’을 이어받는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어지는 ‘조코위 왕조’
한 선거관리원이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를 집계하기 위해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코위 대통령은 이제 물러나지만 그의 영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라보워 후보는 수도 이전, 대규모 해외 투자 유치, 인프라 개발 등 조코위표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공약했다. 대외 관계 역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되 경제적으로는 중국에게서 투자를 끌어오는 등 실리를 취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조코위가 아들인 기브란을 통해 자신의 ‘정치 왕조’를 세우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향방을 둘러싼 우려도 나온다. 조코위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프라보워·기브란 진영을 사실상 밀어주며 ‘킹 메이커’ 노릇을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학생과 시민 활동가들은 조코위 대통령이 부당하게 선거에 개입했다고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고, 관련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화제를 낳았다.

그렉 필리 호주국립대 명예교수는 “조코위는 이번에 출마하지 않은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지지율이 80%를 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프라보워가 그 최대 수혜자”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 대국으로, 전세계에서 네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민주주의를 따르는 국가 중에서는 세번째로 인구 규모가 크다. 인구 약 2억7700만명 중 약 90%가 무슬림으로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이기도 하다. 풍부한 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을 바탕으로 주요 20개국(G0)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노이 | 김서영 순회특파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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