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신원 혁신, 새 지평 열자

진승헌 ETRI 암호인증기반기술연구실 책임연구원

최근 유럽의회(EU) 의회와 이사회는 디지털 신원 분야에 혁신적인 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eIDAS(전자신원확인, 인증 및 신뢰서비스) 개정안(eIDAS 2.0)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조만간 투표를 통해 개정안을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eIDAS 규정은 회원국 간 전자신원확인 및 인증에 관해 신뢰를 향상함으로써 디지털 단일시장(Digital Single Market)을 형성하고, 이에 관한 법적 확실성과 회원국 간 상호인증을 도모하기 위해 2014년 제정하고 2016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러나 eIDAS 규정 시행 후 사후평가과정을 통해 전자신분증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가 온라인 공공서비스에 국한되어 활용도가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규모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기존 민간부문의 신원확인 및 신뢰서비스에 대한 수용 요구 반영과 블록체인기술을 채용한 분산원장, 자기주권신원(self-sovereign identity), 모바일 수단의 확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반영이 추가되었다. 아울러 의료진단서, 전문자격증명서와 같은 전자적 속성 제공 등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2021년 6월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이와 동시에 EU 집행위원회는 다양한 표준으로 인한 혼란을 피하고자 유럽 디지털 신원 프레임워크의 기술 아키텍처, 공통 표준, 모범사례 및 지침 등을 정의하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지속 가능한 번영과 디지털 미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비전 '2030 디지털 나침반 : 디지털 10년을 위한 유럽의 길'도 제시했다.

비전에서 디지털 신원 분야 목표는 2030년까지 모든 주요 공공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시민이 자신의 전자의료 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시민의 80%가 디지털 신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eIDAS 2.0은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먼저, 회원국은 시민과 기업에게 디지털 신원지갑을 제공해 사용자가 디지털 방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신원 데이터와 운전면허증, 졸업장, 의료처방전 등과 같은 공식문서를 모든 유럽국가에서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디지털 신원지갑은 개인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지만, 기업에게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기존의 식별 및 인증수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은 사용자가 로그인하고자 할 때 유럽 디지털 신원지갑 지갑을 수락해야 하고, 회원국은 디지털 신원지갑의 소스코드를 공개하여 일반인이 지갑의 작동을 이해하고 코드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디지털 신원 협력그룹을 설립해야 하며 웹브라우저는 사용자가 웹사이트 소유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명시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존 플라스틱 신분증을 스마트폰에 탑재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몇 년 전부터 운전면허증을 대상으로 모바일 신분증을 도입해 추진하고 있다. 또한, 그 대상을 주민등록증으로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디지털 신원확인은 중요한 시작점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사용자의 다양한 정보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공유되어야만 디지털 혁신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법 정비와 함께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디지털 미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