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타트업, 인재 따라 강남行 … 테헤란로 'AI밸리'로 변신중

황순민 기자(smhwang@mk.co.kr), 고민서 기자(esms46@mk.co.kr), 이상덕 기자(asiris27@mk.co.kr) 2024. 2. 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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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인공지능協 분석
접근성 좋고 업계 정보 몰려
AI 인재들 선호도 1순위
굵직한 벤처투자사도 밀집
1000억 이상 대규모 투자
강남·서초구 비중 70%대
출퇴근 풍경도 확 달라져
넥타이·정장보단 캐주얼
카페 곳곳선 정보공유 미팅

◆ AI 프런티어 ◆

매일경제는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를 맞아 한국의 AI 산업을 이끌고 있는 선두 업체들을 집중 조명하는 'AI 프런티어'를 연중 기획 시리즈로 시작한다. AI는 미래 권력이다. 산업 혁신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고, 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 중심축이 될 AI 대표 기업들을 탐방하고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기업인 A사는 올해 사옥을 서울 서초구에서 강남역 인근으로 이전했다. 강남역 인근 오피스텔의 평(3.3㎡)당 임차료는 서초구보다 높다. 하지만 AI 엔지니어의 강남 선호 현상, 투자 유치를 위해 사무실을 옮긴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AI 사업에 탄력이 붙으면서 임직원이 70명에서 120명으로 늘었다"면서 "새 사무실을 물색하다 개발자·투자자 네트워킹에 최적화된 강남역 인근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강남역 3번 출구에 있는 강남케이알타워.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1시가 되자 사무실로 복귀하려는 직장인이 몰려들면서 긴 줄이 늘어섰다. 엘리베이터 순번을 기다리는 데만 꼬박 10분 이상 소요됐다. 그만큼 사무실이 많은 것이다. 이 빌딩에는 데이터 플랫폼 기업인 오픈서베이, AI 기업 인피닉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AI 기업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강남에서는 더 이상 넥타이와 정장을 착용한 직장인을 마주하기 어렵다. 1990년대까지는 현대차·기아, 포스코, GS그룹, 한솔그룹, DB그룹 등 대기업이 강남으로 이전했다면, 오늘날에는 스타트업과 AI 기업이 강남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퇴근하고, 재택근무를 선호한다.

14일 매일경제가 한국인공지능협회와 공동으로 국내 AI 스타트업·중견기업 포함 708개사를 분석한 결과, 총 108개사(15.25%)가 서울 강남구에 본사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강남대로 남부를 중심으로 한 서초구 일대에는 62개사(8.76%)가 위치했다. 강남역에서 지하철로 네 정거장 떨어진 판교 일대(경기 성남시)에는 65개사(9.18%)가 자리했다.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 등 미국 빅테크(대형 첨단기술 기업)의 한국 법인 사무실도 대부분 테헤란로에 있다.

반면 비수도권에선 대전 유성구가 21개사(2.97%)로 유일하게 10위권에 진입했다. 유성구에는 인재 양성의 근원지인 KAIST가 있다.

미국에 AI 요람인 '헤이스밸리'가 있듯이, 한국에 AI 강남밸리가 있는 대목이다. AI 요람으로 강남이 부상한 것은 정보기술(IT) 인재들이 강남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AI 엔지니어 따라, 기업이 강남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개발자는 높은 연봉, 커리어 성장을 직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강남은 그런 점에서 최적지다. 강남역 일대에는 '성지'로 불리는 커피숍이 몇 군데 있다. 커피를 마시며 궁금한 업계·기업 정보를 교환하는 정보형 미팅인 이른바 '커피챗'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AI 엔지니어들로선 강남에 둥지를 튼 기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AI 인재 부족은 기업들의 강남 이전을 촉발했다. 고급 두뇌 품귀현상이 지속되면서, 이들이 원하는 곳에 터전을 마련해야 우수인재를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다.

특히 개발자는 사무실 위치를 '복지' 요소로 본다. 오늘날엔 강남권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도 이와 함께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기업이 단연 최고 인기다.

강남역 인근 공유 오피스에 입주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AI 업계 특성상 개발자들은 강남이나 판교가 아니면 오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면서 "이는 강남에서 이직·커리어를 위한 스터디와 콘퍼런스 등이 주로 열리는 것이 한몫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요인은 투자 네트워킹이다.

특히 벤처펀드를 결성 운용하는 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금융사 같은 벤처캐피털(VC)이 강남 테헤란로에 모여 있는 점은 강남이 AI 기업을 끌어들이는 원인이다. 투자 유치와 멘토링을 위해선 긴밀한 네트워크가 핵심인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것이 유리하다. 강남에는 스틱벤처스, 퓨처플레이, 캡스톤파트너스, 디캠프 등 투자사와 지원기관이 밀집해 있다.

서울시가 이를 고려해 민간·공공 투자 네트워크 '테헤란포럼'(가칭)을 출범하고 '투자 활성화 네트워크'를 추진한 이유다. 이는 실제 숫자로도 입증된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018~2023년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 3496개사의 주소를 분석한 결과, 이들 스타트업 중 2359개사(67.4%)가 서울에 있으며, 강남·서초구 비중은 53.7%(1266개)에 달했다. 특히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서울 스타트업으로 한정하면 강남·서초구 비중은 73.4%(47개 중 35개)에 달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이들 지역에는 VC가 많고 각종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다"면서 "스타트업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라고 분석했다.

AI 기업이 테헤란로 일대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접근성이다. 판교만 하더라도 서울 중심부와 멀어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직원들 견해가 많다는 것이 IT 업계 설명이다. 1인 가구가 많은 IT 업계 특성상 오피스텔 등 1인 가구 거주 공간이 풍부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VC 업계 한 관계자는 "창업자와 개발자로서는 VC가 밀집돼 있고, 고용 수요가 높은 강남에 둥지를 트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 일대는 젊게 변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IT 버블이 터지면서 강남은 한때 정장을 착용한 직장인이 다니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강남 IT 문화권은 팽창하고 있다. AI 붐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테헤란밸리는 삼성역과 강남역을 잇는 테헤란로를 넘어 강남대로 남부인 서초구 양재까지 아우르는 강남권역(GBD)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황순민 기자 / 고민서 기자 / 이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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