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아칼럼] n번방 사건 n년…당신의 개인정보 안녕한가요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4. 2. 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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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 도시 구청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 A는 복지 관련 서류 작업을 자주 한다.

서울 한 구청 산하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 B. A처럼 공무원이 이용하는 정보시스템에 접속할 수는 없지만, 개인정보에 노출된 건 마찬가지다.

사회복무요원은 개인정보를 다루는 업무를 일절 할 수 없다.

행정·사회복지 현장 사회복무요원의 상당수가 개인정보를 다루는 위법한 업무에 노출된 셈인데,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이들에 대한 온당한 요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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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
사회복무요원 연루 드러나자
개인정보 취급 금지됐지만
현장에선 달라진 것 없어
행정기관 불감증 개선 없다면
개인정보 유출은 재발될 것

한 지방 도시 구청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 A는 복지 관련 서류 작업을 자주 한다. 개인정보를 다루는 업무라 공무원이 할 일이지만 A가 떠맡을 때가 많다. 시스템 접속을 위해 필요한 공무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가 모니터 하단에 항상 붙어 있다.

서울 한 구청 산하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 B. A처럼 공무원이 이용하는 정보시스템에 접속할 수는 없지만, 개인정보에 노출된 건 마찬가지다. 반찬 배달·무료 급식 대상자, 문화센터 강좌 수강자 등의 명단 정리 작업을 수시로 하는데 서류에는 이름과 주소는 물론이고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번호, 가족 관계까지 적혀 있다. 장애 정도나 전과 기록이 적힌 문서를 본 적도 있다.

또 다른 사회복지관의 사회복무요원 C는 목욕탕 관리 업무를 한다. 이용자들에게 목욕탕 사물함 열쇠를 주면서 신분증을 받아뒀다가 열쇠를 반납하면 신분증을 돌려준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신분증이 그의 손에 맡겨진다.

사회복무요원은 개인정보를 다루는 업무를 일절 할 수 없다. 관련 교육도 여러 차례 받는다. 하지만 관행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전임자나 동료들이 별말 없이 하는 일을 혼자서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부당한 업무 지시라며 병무청에 신고해도 기관에 주의 조치가 내려지는 수준에서 마무리되곤 한다. 이후 돌아올 따가운 눈총은 오롯이 사회복무요원의 몫이다. 행정·사회복지 현장 사회복무요원의 상당수가 개인정보를 다루는 위법한 업무에 노출된 셈인데,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이들에 대한 온당한 요구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사회복무요원의 일탈이다. 대다수의 사회복무요원은 선량한 청년들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범죄 경력을 이유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사람들도 섞여 있어 개인정보 유출 위험은 존재한다. 2020년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인 n번방이 대표적이다. 여성 스토킹·협박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출소 후 구청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n번방 주범에게 무단 열람한 개인정보를 넘겨주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이후 병무청은 사회복무요원은 개인정보를 다룰 수 없도록 복무규정까지 바꿨다. 비식별 조치 등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에 한해 복무기관장의 승인과 담당 직원의 감독하에서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규정일 뿐이다.

지난달 구리시는 공무원이 사회복무요원에게 입영지원금 지원사업 업무보조를 지시하면서 시민 415명의 주민등록번호와 휴대전화 번호, 신용카드 번호 등을 열람하도록 한 정황을 확인하고 감찰에 착수했다. 이 사건 이후 병무청은 '개인정보보호 위반행위 신고' 코너를 신설하고, 5월부터는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위법한 업무를 지시한 기관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행정기관들의 뿌리 깊은 개인정보 관리 불감증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형식적인 신고와 법 개정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명의도용이나 계정 탈취, 보이스피싱, 스팸 등 개인정보 유출로 입을 수 있는 금전적·정신적 피해는 막대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된 개인정보 유출 건수는 지난해에만 1000건이 넘는다. 언론에는 'n번방 이후 1년, 끊이지 않는 유출 사고' 'n번방 이후 2년, 여전히 개인정보 취급하는 사회복무요원' 'n번방 이후 3년…' 'n번방 이후 4년…' 기사가 매년 등장한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n번방 이후 n년…또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기사를 내년에도, 후년에도 보게 될지 모른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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