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OO데이`…"외로움은 `예방백신` 없나요?" [SNS&]

안경애 2024. 2. 1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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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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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배고픔이나 갈증과 비슷한 겁니다. 생존에 필요한 무언가가 부족할 때 신체가 우리에게 보내는 느낌이죠."

미국 공중보건 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외로움을 비만이나 약물중독 같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은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를 같은 시기에 내놨다. 외로움은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29% 높이고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을 각각 29%, 32%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 보건당국의 선언 후 1년만에 돌아온 밸런타인데이, 사람들은 외로움과 관계 맺기 중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엑스(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저마다의 '특별한 날 보내기' 풍경이 등장했다.

◇돈을 쓸 것인가 vs 외롭고 말 것인가

인플루언서와 셀럽들은 팬들에게 특별한 날을 행복하게 보내라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했다.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노리는 상업용 게시글도 소셜미디어에 범람했다.

한 네티즌은 엑스에 AI(인공지능) 영상제작 툴을 이용해 장난스러운 영상을 올렸다. "이리와요. 내가 키스해 줄게요"라는 게시글과 함께 화면 속 얼굴이 입술을 앞으로 쭉 내미는 영상이다.

소비자와 상대 남성의 지갑을 털어가기 위한 상술을 경계하는 게시글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여성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라. 여성중심주의는 무분별한 소비를 조장해 남성의 부를 빼앗아 갈 뿐이다. 쓸 데 없는 데 돈쓰지 마라. 대신 당신의 돈을 저축하고 투자해 부자가 되라. 자립심을 가져라."

이 게시글에는 동조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돈을 저축하세요. 그게 마음을 안 다치는 길입니다."

"남자들이여, 그녀는 사랑받지 못하는 약 20명의 남자들로부터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제발, 그 20명 중 한 명이 되지 마세요."

◇"OO데이에도 외롭지 말자"

금발의 한 20대 여성은 엑스에 가게에서 포장해온 듯한 음식을 먹으며 옆에 앉은 훈남과 끈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에게 기대기도 하는 영상을 올렸다. 옆에 앉은 남성은 연신 웃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남성은 가게 앞에 흔히 세워두는 것 같은 사진 판넬일 뿐이다. 그 남성이 실제 자신의 남친인 양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여성의 얼굴에선 적적함이라곤 읽어볼 수 없다. 게시글의 제목은 '밸런타인데이의 나'다.

◇OO데이 때면 '포모' 앓는 이들

있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지만 없는 사람은 대수로운 날, '밸런타인데이'. 옆구리가 따뜻한 사람들은 '또 하나의 날'이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옆구리가 시린 사람들에게는 '시림의 온도'를 2℃ 정도 낮추는 파워가 있다. 밸런타인데이는 서양에서 가톨릭 성인을 기리는 축제에서 유래한 기념일로, 점점더 성대한 이벤트의 날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동참하지 못하는 이들의 박탈감도 커진다.

미 보건당국에 따르면 외로움과 고립감이라는 유행병(에피데믹)이 최근 몇 년 사이 더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미국인 절반가량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고립감은 불안감, 우울증, 치매와 연관되고, 바이러스 감염이나 호흡기 질환에도 더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고 한다. 일상에 침투해 학업성취도와 업무 효율도 떨어뜨린다고 한다. 이는 의료·건강보험 등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 증가로도 이어진다. '생존형 짝찾기' 처방을 내리든지, 혼자 있더라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 '특효약'을 찾는 게 시급하단 의미다. 그렇다면 리스크를 감수해 가며 짝을 만들지 않아도 외로움을 피할 수 있는 효험 좋은 '백신'은 뭐가 있을까.

◇사랑도 외로움도 '산업'이 되는 시대

AP통신은 최근 보도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연애를 피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면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에 시달린다"면서 밸런타인데이에 외로움을 피해가는 방법을 소개했다.

캐나다 매니토바에 사는 53세 여성 엘리스 플레시스는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찾아오는 패배감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짝을 찾도록 돕는 활동을 한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스피드 데이트 이벤트'를 열어 다른 이들이 사랑을 찾도록 돕는 식이다.

갈수록 상업화된 밸런타인데이가 많은 이들의 지갑을 터는 날이라면 외로움도 산업이 됐다. 외로움을 비즈니스 기회로 삼아, 이 시즌에 찾아오는 감정적 고비를 넘기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데이트 앱과 웹사이트, 서적들이 넘쳐난다고 AP는 짚었다.

미국에선 밸런타인데이 하루 전인 2월13일도 밸런타인데이의 영어 첫 글자 'V'만 'G'로 바꾼 갤런타인데이(Galentine's Day)로 정해서 이벤트를 가진다고 한다. 여기서 'G'는 여성을 뜻하는 '걸(Girl)'의 첫 글자다. 이성 간에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와 달리 갤런타인데이는 같은 성인 여성들끼리 자축 행사를 갖는 날이다.

◇"외로움, 관점을 바꿔보자"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 대해 연구하는 데이비드 스바라 미 애리조나대학 심리학 교수는 외로움을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보는 시각이 다소 과장됐다고 보면서도 "밸런타인데이가 이미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악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적 고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재참여의 기회로 인식을 전환하고 이를 추구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외출하고 봉사하고 문자나 전화를 하는 등의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에 사는 27세 여성 토리 마테이씨는 두 번의 장기 연애를 종결 짓고는 자신감 회복을 위해 가벼운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 일정 횟수의 데이트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 수년간 첫 데이트를 많이 했다고 한다. 다만 한번의 데이트 후 후속 데이트로는 잘 이어가지 않는 편이다.

마테이씨는 "혼자 있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도 즐기지만 밸런타인데이나 슈퍼볼 같은 날에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해요. 외로움을 느끼는 슬픈 날이 하루만 있어도 항상 외로운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 더 이상 밸런타인데이를 싫어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먼저 표현하고 나누고 다가가기

"그저 누군가 길거리에서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면 하루가 즐거워질 텐데 로맨틱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싫을 뿐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죠."

마테이씨의 조언은 누군가에게 먼저 사랑을 표현하고 선물을 줘서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사탕이나 꽃을 선물한다고 한다.

'Project UnLonely'를 저술한 제레미 노벨 하버드 챈공중보건대학원 박사는 "외로움이 조기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분명해 보인다"고 말한다. 노벨 박사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창의적인 예술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무료 줌 색칠하기 세션을 열기도 했다.

◇혼자 있기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기

노벨 박사는 "외로움은 주관적인 것"이라며 "외로움은 여러분이 갖고 싶은 사회적 관계와 실제로 맺고 있는 관계 사이의 간극일 뿐"이라고 했다.

'Love Hacks'라는 책을 낸 미 심리치료사 켈리 밀러는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했다면 기쁨을 찾기 위해 내면으로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한다.

"극장에 가보세요. 저녁 식사를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혼밥을 싫어하지만 때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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