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땅굴, 터널, 하마스

박병수 기자 2024. 2.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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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또는 땅굴은 산, 바다, 강 따위의 밑을 뚫어 만든 철도나 도로 따위의 통로로 정의된다.

터널은 산을 뚫어 길을 잇는 도로나, 지하철, 해저터널에서 보듯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기반시설이다.

군사용 터널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터널)이 1970년대 이후 휴전선 근처에서 4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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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또는 땅굴은 산, 바다, 강 따위의 밑을 뚫어 만든 철도나 도로 따위의 통로로 정의된다. 터널은 산을 뚫어 길을 잇는 도로나, 지하철, 해저터널에서 보듯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기반시설이다.

터널은 그 은밀성 때문에 피난처나 군사용으로도 주목받아왔다. 터널이 은밀한 피난처로 사용된 사례로는,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지방에 있는 몇몇 지하도시가 꼽힐 수 있다. 그중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한번에 2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로 지하 85m까지 땅굴이 미로처럼 뚫려 있다.

땅굴은 기원전 7~8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비잔틴 시대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슬람의 침입을 피해 숨어 살기 위해 이를 본격 지하도시로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 지하도시는 1923년 튀르키예-그리스의 인구교환협정에 따라 이 지역 주민이 대거 그리스로 옮겨간 뒤 버려졌다가 1960년대 재발견됐다.

군사용 사례로는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이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베트콩(남베트남 게릴라군)은 무려 수백 또는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터널을 뚫어 이동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미군을 괴롭힌 것으로 유명하다. 지하터널은 그들에게 통행로 겸 피난처, 야전병원, 물자 저장고가 됐고, 압도적인 화력을 갖춘 미군을 상대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 수행의 핵심 수단이 됐다. 미군은 여러차례 이들 터널을 파괴하기 위해 대규모 공습과 수색작전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호찌민시 근처에 있는 꾸찌터널은 현재 전체 250㎞ 구간 중 절반 정도가 전승 기념 및 관광용으로 공개되고 있다.

군사용 터널의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터널)이 1970년대 이후 휴전선 근처에서 4개 발견됐다. 군 당국은 2000년대 이후 일부 “땅굴이 더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시추 등 정밀조사를 벌였으나 추가로 땅굴을 더 발견하진 못했다. 발견된 땅굴 중 3곳은 현재 관광 및 안보교육용으로 공개되고 있다.

이번 이스라엘-가자 전쟁에도 땅굴이 등장했다. 하마스는 우리 세종시보다도 작은 면적인 가자에 무려 500㎞가 넘는 지하터널을 뚫어 이스라엘군에 대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를 파괴하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침수작전까지 동원하고 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렵거니와, 설령 성공하더라도 군사작전만으로 정말 이스라엘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박병수 국제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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