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머스크도 입소문… ‘건국전쟁’ 흥행 빼닮은 저예산 영화

이정우 기자 2024. 2. 14.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美 박스오피스 1위 ‘사운드 오브 프리덤’ 21일 개봉
아동 인신매매 추적·구출 실화
제작비용의 1700% 수익 올려
티켓 기부 독려‘페이잇 포워드’
엔딩서 주연 배우가 직접 호소
보수정치인들 지지 표명 효과도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팀 밸러드(제임스 카비젤)는 아동 인신매매 현장을 급습하고 아이들을 구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영화의 주요 장면들. NEW 제공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1일 개봉, 연출 김덕영)이 갈수록 상영관을 넓혀가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본 소규모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렇다 할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여권인 국민의힘에선 ‘관람 인증 릴레이’까지 벌인다. 독립 영화에 속하는 다큐멘터리가 입소문으로 흥행하며, 보수 진영에서 각광받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국에 ‘건국전쟁’이 있다면, 미국에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제작비의 1700%를 벌어들인 ‘사운드 오브 프리덤’(21일 개봉)이 있다. 영화의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저자본 소규모의 인디 영화가 입소문을 발판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듯’ 흥행 이변을 일으키고, 보수 진영에서 환영받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흥행 과정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제작비는 1450만 달러. 수억 달러를 쓴 대작이 예사인 할리우드에서 독립 영화 수준의 소규모 영화이다. 그런데 북미에서만 1억8000만 달러 넘게 벌었고, 전 세계에서 2억5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쓴 돈의 1700%에 달하는 수익을 얻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등 쟁쟁한 대작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영화는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특수요원이 팀을 구성해 비공식작전으로 아동 인신매매범들을 잡고, 수십 명의 아이들을 구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과 중남미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아동 인신매매의 참혹한 현실을 담았다. 주인공 팀 밸러드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예수 역으로 잘 알려진 제임스 카비젤이 맡았고, 멕시코 감독 알레한드로 몬테베르데가 연출했다. 영화의 규모는 작지만,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연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자체는 독립 영화라기보단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같다. 팀이 아동들을 구출해내는 과정을 잔기술 없이 우직하고 직선적으로 담았다.

영화의 내용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흥행하게 된 경위이다. 이 영화는 만든 지 5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배급에 나서지 않을 만큼 개봉에 애를 먹었다. 본래 20세기폭스가 남미 개봉을 목적으로 영화의 배급권을 가졌지만, 폭스사가 월트디즈니컴퍼니에 인수되면서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후 배급권은 중소 배급사인 앤젤스튜디오로 넘어갔고, 가까스로 지난해 개봉할 수 있었다. 개봉이 미뤄진 이유는 영화에 내재한 보수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관 때문이란 분석도 있고, 일각에선 할리우드 주류에까지 퍼져 있는 아동 인신매매 문제를 덮기 위해서란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면 주연 배우 카비젤의 ‘기부’ 독려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는 사고팔아선 안 된다”며 “여러분이 이야기꾼이 돼 이 이야기를 퍼뜨려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예제 폐지를 이끌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처럼 이 영화가 아동 인신매매를 없애는 21세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되길 원한다”고 강조한다. 관객들에게 입소문 내줄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다.

주연배우가 나서 기부를 독려하는 데엔 이 영화의 독특한 배급 방식인 ‘페이 잇 포워드’와 관련이 있다. ‘페이 잇 포워드’란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티켓을 기부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관객들의 입소문에 적극적으로 기대고, 단체 관람을 자연스럽게 독려하는 구조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나 ‘문재인입니다’가 활용한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 투자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라면, ‘페이 잇 포워드’ 방식은 기부를 통해 다른 관람객이 혜택을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보수 정치인들이 지지를 표명한 것도 ‘건국전쟁’과 닮은꼴이다. 정치인뿐 아니라 벤 셔피로, 조던 피터슨 등 우파 논객,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영화에 대한 지지에 가세했다. 보수 진영은 결집했고, 진보 진영은 외면했다. 제작에 참여한 멜 깁슨은 진보 성향이 주류인 할리우드에서 보수 성향을 가진 대표적 영화인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