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남북 안보딜레마의 딜레마

윤대엽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2024. 2.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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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엽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갑진년 새해, 한반도 위기논쟁이 진행중이다. '김정은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38North 기고문이 계기가 됐다. 이후 언론, 정계, 학계에서 전쟁위기에 대한 검증, 유화정책과 강경정책에 대한 찬반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익숙한 위기다. 그러나 핵무장이 기정사실화된 김정은 체제의 위협이 왜, 어떻게 과거와 다른지 전략적 과제와 교훈을 제공한다.

칼린과 해커 박사가 김정은 체제의 전쟁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는 세 가지다. 우선 1990년 김일성의 전략적 결단 이후 북한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실패한 것이다. 북한정권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완충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했다. 김정은 체제가 북미관계에 대한 전략적 목표를 포기함으로서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을 변화시키려 결단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정치적 유산이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심리적 도전이기도 했던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하면서 선대의 유훈으로부터 탈피해야 하는 '김정은 노선'도 본격화됐다. 김 위원장은 미·중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불안과 미국 대선을 '혁명적 전쟁'에 대한 언어를 부활시키는 기회로 활용했다.

칼린과 해커 박사가 설명하지 않은 '북한의 가장 위험한 도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찬반논쟁이 엇갈린다. 전면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와 전문가가 비관적이다. 북한의 핵전력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만, 한국과 한미동맹의 대규모 반격을 억지,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은 취약하다. 더 큰 피해를, 경우에 따라서는 체제종말까지 감수해야 하는 핵무장한 약소국 북한에게 전면전은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전면전을 위해 대규모 병력과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는 정보적인 근거도 부족하다. 군사적 우위에 있는 한미동맹과 전쟁을 결심한 북한이 230만 발 이상의 포탄과 미사일을 러시아에 수출한 것 역시 전면전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합리적 근거다.

그러나 제한적, 국지적 차원의 군사적 충돌 위험이 고조되고 그 전략적 성격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노이 회담 이후 구체화되고 있는 '김정은 노선'은 해방과 통일이라는 남북관계의 유훈을 '정복'으로 변경했다. 2023년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니며 한국을 제1의 적대국, 교전국이라고 규정했다. 김일성·김정일 체제에서 계승된 조국통일 3대 헌장을 헌법에서 삭제하는 것은 물론 대남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후 통일전선부를 포함해 대남사업을 담당해온 조직, 인력, 수단도 대폭 재편되고 있다. 해방과 통일의 대상이었던 한국을 민족이 아닌 적으로 규정한 것은 유훈정치와의 단절을 넘어 암묵적인 비판을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이 핵무기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군사적, 정치적, 이념적 기반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한미가 대결을 기도한다면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해 공화국에 편입해야 한다는 호전적인 의지도 분명히 했다.

핵무장한 김정은 체제의 호전적 수사와 군사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의견이 엇갈린다. 북한의 반복된 행태에 주목하는 대부분의 시각은 김정은 노선 역시 북미대화를 위한 노련한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북미대화가 단절되거나 미국의 주요선거 때마다 북한의 도발빈도도 증가해왔다. 북한은 핵 강압과 함께 북러, 북중의 외교수단을 지렛대로 한반도의 세력균형과 한미동맹의 재편을 의도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한미, 한미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면, 칼린과 해커 박사는 바로 이와같은 판단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상상력의 실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한적, 국지적 교전일지라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며, 선택지가 없는 북한에게는 위험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도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는 전쟁과 평화를 일체화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전쟁의 공포는 애국심과 체제안정을 위한 정치적 힘을 발휘한다. 더구나 핵무장한 그러나 약소국인 김정은 체제가 전쟁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축소되면 안보딜레마의 위험과 비용도 증가한다. 불필요한 남북갈등이 한국에 더 많은 비용을 부과하는 것 역시 모순적인 현실이다. 북핵위협의 상쇄를 위한 군비경쟁은 당분간 불가피한 현실이다. 동시에 북한에게 전쟁보다 매력적인 심리·실질적 전쟁의 등가물(the equivalent of war)을 제공하는 전략도 추진돼야 한다. 이것이 칼린과 해커 박사가 우려하는 승자가 존재하지 않는 핵 사용을 억지하는 길이다. 윤대엽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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