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권 땐 기존 북핵 합의 소환 가능성… 치적용 ‘스몰딜’ 우려 [심층기획-트럼프 리스크 긴급점검]
“재임 당시 북·미협상 부인 않을 것” 관측
北, 영변 핵시설 폐기부터 시작할 수도
상응조치로 더 높은 제재 해제 원할 듯
트럼프는 ‘부분 비핵화’로 만족 가능성
우크라전·중동 문제로 관심 못 끌 수도
2기 행정부서 北문제 누가 다룰지 주목
미국의 다른 동맹국과 달리 한국엔 ‘트럼프 리스크’가 하나 더 있다. 북한과의 준비되지 않은 불완전한 핵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동맹국이자 북핵 문제 최대 관련국인 한국을 제외한 북·미 핵협상 직거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부분 비핵화로 만족하는 ‘스몰딜’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북·미 협상이 재개된다면 그와 김 위원장 사이 2018년 체결된 싱가포르 합의가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6·25전쟁 미군 유해 송환 등에 합의했다. 당시 앞선 두 개 항이 나머지 두 개 항의 반대급부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불확실한 합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13일 통화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뿐 아니라 자신의 업적으로 과시하는 재임 당시의 북·미 협상을 완전히 부인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인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양측 간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으므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미 정상 간 합의는 싱가포르 합의뿐이다.
국무부 정보 담당 출신으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문제에 깊이 관여한 앨리슨 후커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스몰딜을 하지 않기 위해 하노이 협상을 결렬시킨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편다. 반대로 1, 2차 북·미 협상을 이끌었으나 2019년 9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결별을 택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VOA(미국의소리) 인터뷰에서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을 대가로 제재를 완화하는 선택을 다시 해야 한다면 미국의 국가안보나 동맹국의 국가안보보다 그 순간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이 될지를 따져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하노이 협상을 결렬시킨 것은 당시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스캔들을 폭로하면서 이 문제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다만 1기와 다르게 2기에서는 북한 문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1기 당시와 현재의 국제정세가 많이 다르고,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서도 한 번의 학습을 통해 북한 비핵화가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이스라엘) 문제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보다는 자신이 해결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결과를 볼 수 있는 쪽으로 어젠다 세팅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우리 정부로선 각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택을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관련된 우리 내부의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우리 정부로선 북·미관계의 급변에 대비해 (윤석열정부의 대북정책인) 담대한 구상을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볼턴 전 보좌관,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등 워싱턴의 다수 매파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다시 일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언급해왔다. 다만 지난해 말만 해도 회의적이었던 분위기와 다르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선 독주로 이 같은 분위기가 일부 전환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2월 중순 현재 공화당 상원의원 49명 중 20여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식 지지했다는 보도는 바뀐 분위기를 보여준다.
현재로는 헤리티지재단,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 등 공화당계 싱크탱크와 연관된 이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트럼프 1기에서 북한을 다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불화가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이들이다. 후커 전 보좌관은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으로 기용되면 요직에서 북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볼턴 전 보좌관의 비서실장이었던 프레드 플라이츠 전 NSC 비서실장, 안토니 루지에로 전 NSC 보좌관 역시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북한을 다뤄 주목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북한 문제를 다룰 인물을 기용할 가능성도 있다.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은 포드 임원 출신으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가 됐으며 현재는 보잉에서 일하고 있다. 박원곤 교수는 “한반도 쪽 정책 세팅에 주류 인사들이 들어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누가 들어오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김 위원장과 직접 소통에 의존할 가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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