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말만 믿고 겉핥기식 검증” vs “정략적인 접근… 문제 없다” [세상을 보는 창]

박병진 2024. 2. 1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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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GP 불능화 검증 진실 공방
軍 GP 철거·폐쇄 조치 확인 불구
최근 北 지하시설 활용 정황 포착
2018년 검증단 부실 의혹 불거져
신원식 국방부 장관 “부실 검증
핵심시설 파괴 정확한 검증 빠져
윗선 ‘이상 없다’ 보고 압박 정황”
당시 국방부 인사 “왜곡된 주장
검증관들 땅굴 탐지반 자문 구해
北 지하시설 운영 우려 사전교육”

“머지않아 진실의 문이 열릴 것이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말이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Guard Post) 11곳에 대한 우리 군의 불능화(완전히 파괴돼 군사 시설로 활용 또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 검증 작업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2018년 11월20일 오후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중부전선 DMZ 내 북측 GP를 폭파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지난 8일 중동 순방에서 돌아온 신 장관에게 재차 이 문제를 꺼냈다. “감사원에서 조사할 거다. 당시 검증했던 문서가 말하지 않겠느냐”는 확신에 찬 답이 돌아왔다. 당시 남북 간 유화 분위기 속에 북측 말만 믿고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검증을 하고 불능화 조치가 이뤄졌다고 발표했다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대국민 기만행위나 다름없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귀순 어부 강제 북송 사건처럼 문재인정부 대북 정책을 둘러싼 논란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측 제지로 북 GP 현장 접근과 검증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북한군 GP 운용과 한계를 잘 아는 군 인사들도 이 건이 피격 사건이나 강제 북송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 장관 발언이 남북 간 강대강 대치 상황에서 9·19 군사합의 파기 명분을 찾으려는 것이거나 예비역 군인들의 반북 정서를 자극하려는 정략적 판단이 깔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북 GP 불능화와 복귀 과정 어떻길래

남북은 9·19 군사합의를 체결할 당시 ‘비무장지대(DMZ) 내 GP가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면서 군사분계선(MDL)에서 남북으로 각각 1㎞ 이내에 있는 GP 11곳(보존 GP 1곳 포함)을 시범적으로 철거·폐쇄 조치키로 했다. 이에 북한은 그해 11월20일 폭파 방식으로, 우리는 환경과 안전 문제를 고려해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에 나섰다. 12월12일에는 남북이 각각 77명의 검증단을 파견해 철거 여부를 확인했다. 우리 측은 북측 GP의 불능화 이행 여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접촉해 검증했다고 밝혔다. 5일 뒤인 12월17일 합동참모본부는 북측 GP가 불능화한 것으로 최종 판정했다. 총안구(기관총이나 소총 같은 직사 화기를 쏠 수 있는 소규모 지하 진지) 일부가 남아 있기는 하나, GP와의 연결 통로가 끊어져 기능과 역할이 상실됐다는 설명과 함께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22일 우리 정부의 9·19 합의 일부 효력 정지 선언을 계기로 북한이 MDL 인근 11개 GP 일부에서 지하시설을 활용하고 있는 정황이 군 감시자산을 통해 포착됐다. 지난 정부의 GP 불능화 주장과는 달리 해당 지하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배경이다. 결국 신 장관의 부실 검증 의혹 제기로 이어졌다.

◆‘문재인정부의 검증 문제 있다’는 신 장관

국방부는 당시 현장 검증단의 보고서 등을 들여다보며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상태다. 보고서는 북 GP 지하시설이 파괴됐는지를 관측 장비 등을 통해 정확히 검증하지 못했고, 육안으로 살피면서 북한군 주장을 들은 게 전부였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박 겉핥기식 검증이 이뤄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소식통은 심지어 “‘이상이 없다’는 식의 보고를 주문하는 윗선 지시에 담당자가 ‘군인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고함을 지르는 등 1시간30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는 증언도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와 검증 작업을 진행한 합참 간 갈등설도 제기된다. 신 장관은 “북 GP 불능화 부실 검증 사실에도 문제가 없다며 압력을 행사한 이가 누구인지, 감사원에서 객관적으로 조사할 것”이라며 “당시 예하부대에서 만든 것, 합참에서 국방부에 보고한 것 등 리포트에는 용납될 수 없는 모든 사실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은 GP 상층부를 폭파하는 식으로 흉내만 낸 것”이라고 단정 짓고는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감사원은 지난달 23일 전직 군 장성들의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으로부터 북 GP 불능화 검증과 관련한 공익감사 청구를 접수,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능화 검증의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에 대한 직권남용 등 혐의점이 의심될 경우 수사 의뢰가 이뤄질 수도 있다. 물론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감사원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검증 총괄 책임자, “장관 접근 방식은 정략적” 반박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GP 불능화 검증 작업을 총괄 지휘했던 김도균 민주당 국방대변인은 “알고 있는 사실관계에 비춰 보면 신 장관의 문제 제기는 다소 과하고 왜곡된 것으로, 접근 방식이 정략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검증에 참여한 중령 이상 77명의 장교들은 쟁점 사항과 관련한 체크리스트는 물론이고, 땅굴 탐지반에 자문까지 구했을 정도”라면서 “혹시 북한이 GP 상부만 걷어내고 지하벙커 시설 등은 그대로 둘 수도 있다고 판단해 합참에서 사전 교육도 하고, 현장 채증 장비까지 가져갔다”고 했다. “지뢰탐지기만 가져갔다”는 국방부와 말이 다르다는 지적에 그는 “(지하 투과 레이더 등) 일부 장비는 현장 검증 시 도보로 이동해 가져갈 수 없었다”며 “북한이 막아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와 합참 간에 다툼이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다만 일부 보고서가 각색됐을 가능성에는 여지를 남겼다. 지뢰 매설 우려로 북 GP 주변 ‘날개진지’(초소 좌우에 날개처럼 조성한 진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을 두고서 부실 검증이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검증에 문제가 있었다면 관련자들은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불능화 검증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GP 불능화와 관련한 북한 기만전술 부분에 대해선 “당시 GP 폭파 장면을 보면 폭발력이 어마어마했다. GP 상부만 파괴할 정도는 넘어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한 뒤 “북 GP 지하벙커가 굉장한 시설인 줄 알지만 사실 농기계 창고 수준에, 습기가 가득 차 방치된 것이 태반이라는 보고가 당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말도 내놨다. 그런 그도 신 장관처럼 “관련한 보고서를 보면 관련 사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일한 보고서를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현장 상황 고려한 진상 규명이 되어야

GP 불능화 검증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점에 군 관계자 대부분이 공감한다. GP 불능화 검증 관련 담당자들이 버젓이 남아 있는 지하벙커 시설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심각한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불능화 검증 발표에 윗선 압력이 작용했는지도 따져 볼 일이다. 다만 현장 상황을 외면한 채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군심만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상처는 오롯이 군의 몫이다.

추정과 추측만으로 지난 정부의 행위를 성토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군 GP는 1990년대까지 분명한 군사 시설이었으나 2000년대 들면서 탈북자 감시소 수준으로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게 군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북 GP 불능화 검증 작업에 관여한 한 예비역 장성은 “북 GP 폭파는 지하시설까지 포함된 것으로 안다. 폭파에도 구조물은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걸 최근 북한군이 정리하고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우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 장성은 “과학화 장비 없이 오직 사람에 의한 감시가 대부분인 북한은 낙후된 GP 모습을 보이길 꺼렸을 수 있다.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군인이라면 당시 불능화 검증 작업을 두고 이런 식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77명의 군인을 무능한 바보로 만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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