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장 '의사면허 취소' 카드 꺼낸 정부... 4년 만에 공수 바뀐 의정 대결
어떤 사유든 금고형 이상 받으면 자격 상실
업무개시명령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가능
2020년보다 업무개시명령 실효성 강화된 셈
4년 전 의대 증원 국면과는 판이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위시한 의사단체들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할 때만 해도 익숙한 상황의 반복인 듯했지만, 정부가 초장부터 '의사면허 취소'라는 초강경 대응책을 꺼내 들면서 상황은 사뭇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료 파업이 현실화하면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2020년 당시와 같지만, 지난해 의료법 개정으로 의사면허 취소 범위가 넓어진 점을 정부가 십분 활용하며 의사 집단행동의 여지 자체를 좁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보건복지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의협 등을 겨냥해 '면허 취소'를 처음 언급한 건 설 연휴 직전인 지난 8일이었다. 대통령실이 그날 예고 없이 진행한 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지금 당장 조치할 상황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업무개시명령이나 면허 취소 같은 조치를 검토하고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두 제재 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의사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언제든 이들 조치를 발동할 수 있음을 연일 시사하고 있다. 이날도 박민수 2차관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 대응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며 "법을 지키고 환자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수세에 몰렸던 2020년 의정 충돌 때와는 다르게 강경책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의료법이 개정돼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면허 취소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4년 전엔 의료 관련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에 대해서만 면허를 취소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5월 개정된 의료법은 의사가 어떤 사유로든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4년 전처럼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하고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일이 되풀이되더라도, 그새 의료법이 개정돼 정부 명령의 실질적 효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의사가 업무개시명령을 어길 경우 의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자격정지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하지만 이제는 면허까지 잃을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 위반으로 기소돼 벌금형을 넘어 금고·징역형을 선고받게 되면 의사면허 취소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의사면허가 취소될 가능성에 대해선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김성주 의료전문변호사는 "양형은 법원에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복지부의 법리적 흠결은 없다"며 "초범은 주로 벌금형이 나오지만 '국민 목숨을 담보로 파업했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다면 집행유예나 징역형이 선고돼 면허 취소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업무개시명령의 위헌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진석 의료전문변호사는 "집단행동금지명령이나 업무개시명령 모두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를 통해 위헌을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며 실질적으로 의사면허가 취소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복지부는 2020년 사태 당시 전공의들이 업무개시명령 문자를 피하려 휴대폰 전원을 껐던 이른바 '블랙아웃' 전략 역시 이번에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무개시명령은 의사 개개인에게 직접 송달돼야 하는데 휴대폰을 켜지 않았으니 송달되지 않았다는 게 당시 전공의들이 폈던 논리였다. 하지만 복지부는 최근 브리핑에서 "휴대폰이 꺼진 경우도 문자를 발송하면 송달로 볼 수 있다는 법률 검토를 마쳤다"고 밝혔다.
정부 주장에 반론도 있다. 조 변호사는 "업무개시명령은 서면으로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고, 전자문서로 전달하는 경우는 상대방 동의를 필요로 한다"며 "문자로 일방적인 업무개시명령을 전하는 것은 행정절차법에 위반된다"고 반박했다. 일방적인 '문자 송달'은 유효하지 않다는 논리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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