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핫플’ 된 120세 광장시장, 종로 상권까지 살렸다
지난 12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남2문 근처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 외국인 4~5명이 호떡이며 붕어빵을 들고 우르르 들어와 ‘아메리카노’ 등 커피를 주문했다. 이곳은 광장시장을 들르는 외국인 손님들이 꽈배기나 호떡 같은 ‘길거리 디저트’를 사 먹으며 각종 음료를 함께 사 가는 곳 중 하나다. 주인 A씨는 “요즘 광장시장이 각종 음식을 사 먹으러 온 외국인 손님들로 매일 북적이면서 우리 가게까지 손님이 크게 늘었다”면서 “평일엔 손님 10명 중 3~4명은 외국인일 정도”라 했다.
비슷한 시각 광장시장의 먹거리 골목. 길을 지나갈 땐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혀야 할 만큼 인파로 가득했다. “How much is it?” “뚜오샤오치엔(多少钱)?” 육회김밥·빈대떡 등의 노점을 지나칠 때면 곳곳에서 ‘얼마냐’고 묻는 각종 외국어가 들렸다.
120년 전통의 서울 재래시장인 광장시장이 10~40대 MZ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출생자) 외국인 관광객들을 흡수하는 K관광의 성지(聖地)로 떠오르면서, 코로나 기간 동안 매출이 바닥을 쳤던 인근 종로 상권도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13일 비씨카드에 따르면, 2020년 광장시장 인근의 서울 종로 일반 음식점의 결제 금액을 100으로 봤을 때, 2021년엔 112, 2022년엔 155, 2023년엔 185가 됐다. 숙박업도 2021년 103, 2022년 186, 2023년엔 241로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광장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로 유입되면서 종로 상권 전체의 매출도 달라진 것이다.
☞5면에서 계속
◇광장시장, 종로 상권 전체를 바꾸다
같은 날 광장시장 동문 길 건너편의 한 아웃도어 매장. 외국인 관광객 5~6명이 이곳에서 등산복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모(67)씨는 “광장시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에도 들러 옷을 사가는 경우가 크게 늘었고, 덕분에 작년 11월엔 ‘택스프리(tax free)’ 가맹점 신청까지 했다”고 했다.
광장시장 북2문 인근에서 탕후루를 판매하는 김모(45)씨도 “광장시장을 찾는 일본인·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다 보니, 요즘엔 우리 가게에도 외국인 손님이 밀려들고 있다”고 했다.
광장시장은 코로나 확산 이전과 이후 모습이 가장 달라진 곳 중 하나다. 코로나 확산 이전의 광장시장은 본래 인근 직장인과 상인, 50~60대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끌던 곳이었다. 빈대떡과 김밥을 파는 대표적인 먹거리 골목으로 꼽히며 내국인 손님들로 늘 북적였다. 변화가 찾아온 건 코로나 직후다. 거리 두기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고, 인적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광장시장의 부활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상인들은 그러나 이를 ‘재정비의 시간’으로 바꿨다. 대표 식당 20~30여 곳이 인테리어를 바꿨고 싱크대·개수대를 고치면서 위생도 개선했다. 비씨카드에 따르면 광장시장의 외국인 결제 금액과 결제 건수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20년 외국인 결제 금액·결제 건수를 100으로 보고, 2022년엔 2020년과 비교했을 때 결제 금액은 115, 결제 건수는 211가 됐고, 2023년엔 결제 금액 501, 결제 건수 1166으로 늘었다. 3년 새 5배, 11배씩 늘었다.
광장시장의 변화는 인근 종각역부터 종로5가, 을지로4가에까지 생기를 불러왔다. 종각역 근처 세운상가, 낙원상가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급증한 또 다른 지역으로 꼽힌다. 세운상가에 있는 ‘카페 호랑이’와 디저트 가게 ‘빠우’, 낙원상가 인근의 ‘서울레코드 LP펍’, 익선동의 ‘파스타옥’ 등은 최근 젊은 외국인 고객들이 여행 후기를 잇따라 올리는 장소다.
광장시장의 인기 때문에 종로3~5가의 점포 월세·권리금도 전반적으로 올라가는 추세다. 광장시장 인근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조모(65)씨는 “예전에 권리금도 안 받던 곳들이 월세도 한달 150만원이 넘기 시작했다”면서 “광장시장의 인기가 종로 상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K콘텐츠가 만든 ‘반전’
광장시장 남문에 있는 카페 ‘어니언’은 광장시장을 바꾼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이곳은 비닐을 친친 감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로 꾸민 인테리어로 화제를 모은 곳이다. 구운간장치킨 등을 안주로 내놓는 시장통 속 와인바 ‘히든아워’, 색동저고리로 만든 헤어 액세서리며 각종 시장 먹거리를 판매하는 이색 편집숍 ‘365일장’ 등도 광장시장에 10~30대 MZ 고객들을 불러모았다.
외부에서 이름을 떨친 유명 가게들도 광장시장에 팝업 스토어(임시매장)를 열거나 새로 입성하고 있다. 마라떡볶이로 유명한 ‘용용선생’이 작년 광장시장에 팝업스토어를 열었고, 제주맥주도 광장시장에 임시 매장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제주 특산물을 넣어 만든 크림빵으로 유명한 ‘아베베베이커리’, 충남 예산시장에 위치한 유명 애플파이 맛집 ‘사과당’도 올해 광장시장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2019년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길 위의 셰프들’ 등에서 광장시장을 재조명해서 보여준 것도 손님들을 다시금 불러 모으는 데 영향을 끼쳤다. 영국 출신 팝 가수 샘 스미스, 영화 ‘캡틴 마블’로 유명한 브리 라슨, 영화감독 팀 버턴, ‘핑크팬더’ 그림으로 알려진 스트리트 아트 작가 캐서린 베른하르트 등이 광장시장에서 산낙지, 김밥, 떡볶이, 호떡, 꽈배기 등을 즐기는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전파되면서 2020년 이후 ‘광장시장’ 인기에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잇단 바가지 논란은 숙제
일각에선 광장시장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외국인·내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최근 소비자들을 들끓게 한 ‘바가지 전집’, ‘메뉴 바꿔치기’ 등의 문제는 고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한 음식 리뷰 유튜버는 광장시장에서 6000원짜리 순대를 주문했더니 순대고기 모둠으로 바꿔 팔더라고 폭로한 바 있다. 손님이 1만5000짜리 모둠전을 시켰는데도 음식점 주인이 “양이 적다”면서 더 주문할 것을 강권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F&B 업체 대표는 “상인회가 정량표시제 등을 완전히 정착시키지 않으면 이같은 문제는 계속 불거질 수 있다”면서 “광장시장이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안착하기 위해선 이 부분을 반드시 먼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상인 일부가 여전히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서울시 상권활성화담당 팀은 이에 ‘미스터리 쇼퍼’ 제도 등을 도입, 상인회가 스스로 자정노력을 계속하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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