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플랫폼법, 말바꾸는 공정위
”시간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듣겠습니다.”
지난 7일 오전, 만원(滿員)이 된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이 술렁였다. 공정위의 올해 업무 계획 브리핑 자리였다. 최대 관심사는 공정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플랫폼법(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이었다. 이 법은 네이버·카카오·구글·애플 같은 거대 플랫폼 회사들을 사전에 지정해 끼워 팔기 같은 불공정행위를 신속하게 규제하려는 내용이다. 공정위가 설 연휴 전엔 구체적 법안을 발표한다는 방침이었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기자들이 몰린 것이다.
그런데 공정위가 돌연 “시간을 갖겠다”고 하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추가 검토”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법안 공개 시기에 대해선 “특정할 수 없으나,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똑같은 기자실에서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강한 어조로 “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라고 했다. 불과 2주 만에 어조가 180도 바뀐 것이다. 공정위는 그간 플랫폼법의 핵심으로 강조해 온 ‘지배적 플랫폼 사전 지정’ 자체도 이젠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여론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 미국 재계와 국내 플랫폼 업계, 학계 등이 일제히 반대 입장을 내서 코너에 몰렸다는 것이다. 특히 법안의 수혜자로 예상되는 중소형 벤처기업들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내부에선 “벤처기업들이 협력 관계인 대형 플랫폼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공정위의 선의가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그러나 선의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많지 않다. 만약 거대 플랫폼들의 영향력이 그렇게 세다면, 공개적으로 법안 추진을 하기 전에 벤처기업들을 설득하기 위해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 중소형사들은 플랫폼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 유럽에선 미국·중국 플랫폼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비슷한 디지털시장법(DMA)이 통과됐다는 점 등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했다. 그렇게 하나둘 씩 우군(友軍)을 확보한 뒤 법안 추진을 공식화했다면, 지금 와서 말을 바꿔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여론전에서 밀려 놓고, “내 말을 안 들어준다”고 뒤늦게 불평한다면 업계에 어떻게 비칠까.
작년 말 구글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유튜브 뮤직이 멜론을 제치고 국내 음원 플랫폼 1위에 올랐다.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사면 유튜브 뮤직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끼워 팔기’ 전략 덕이다. 플랫폼법은 이런 횡포를 신속하게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공정위가 법안 추진을 미루면서, 결과적으로 유튜브 등 외국 플랫폼이 방해받지 않고 더 오래 국내시장을 휘저을 수 있게 됐다. 여론전도 전쟁이다. 전쟁은 항상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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