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윤리는 과학이다

조갑룡 교육인 2024. 2.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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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룡 교육인

친구가 붓으로 써서 보내준 연하장의 생기(生氣)가 이어지고 있다. ‘갑진년, 복 짓는 한 해가 되길 빈다’. 복 받으라는 얘기는 많이 듣지만 ‘복을 지으라’는 말은 흔하지 않다. 뉴턴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하면 복을 지어야 복을 받는다. 과학적 인과율이다.

심수봉이 작사한 번안곡 ‘백만 송이 장미’의 후렴 부분이 생각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세상에 대한 무한 긍정이자 인과응보에 대한 굳센 믿음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윤리적 도(道)를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쁜 일을 하고도 잘 산다는 사람이 회자(膾炙)되곤 한다. 인과(因果)에 어긋난다. 헷갈린다. 그렇다고 이 어긋남을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로 덮어버리자니 명쾌하지가 않다. 결국 인간의 오관(五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끌어들이기로 한다.

여기 빈 병이 하나 있다. 그 빈 병의 입구에 동전 하나를 얹고 동전과 유리 사이의 빈틈을 메우기 위하여 물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 양손으로 병을 잡고 얼마간을 기다리면 동전이 들썩인다.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상급 학년 정도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손바닥과 동전 사이에서 일어난 과정을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그것은 손바닥의 열이 병 속의 기체를 팽창시켜 동전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 차원 높여보자. 인간의 의식이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혀낸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보고서가 있다. 1995년 5월에 발표한 ‘의식세계와 신비한 물리 현상(CONSCIOUSNESS AND ANOMALOUS PHYSICAL PHENOMENA)’이 그것이다.

축구 경기에서 공격 방향을 정하기 위해 동전 던지기를 하는 경우, 사람의 의식이 동전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험자가 동전의 앞면이나 뒷면을, 그리고 아무 면도 생각하지 않는 3가지를 마음에 품고 각각의 경우에 대하여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이 나오는 횟수를 측정했다. 140명을 대상으로 한 명당 위의 3가지 마음으로 5000번씩의 동전 던지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아무런 의도를 갖지 않은 경우는 앞면과 뒷면이 비슷한 횟수로 나왔지만 앞면 혹은 뒷면에 대한 생각을 품은 경우는 의도한 방향의 횟수가 통계적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5%를 초과했다. 더욱이 이 같은 현상이 우연히 일어날 확률은 300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의식이 원인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인간은 20~2만 헤르츠(Hz) 사이의 소리 외에는 들을 수 없고, 3800~7700 옹스트롬(Å) 사이의 가시광선 영역 밖의 빛은 볼 수가 없다. 오관에 의한 감지가 세상에 대한 온전한 정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신 혹은 윤리적 세계에도 물질이나 에너지를 지배하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적용되고, 우리의 한 생각이 실제적 현상을 일으키는 힘이라 생각하면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한 선인들의 지혜에 수긍이 간다.

그리하여 윤리와 과학이 하나임을 깨달을 때 이 지상의 삶을 더욱 경건하게 대할 것이고, 그때 우리는 그립고 아름다운 별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동물적인 삶에서 인간적인 삶으로 넘어오던 3000여 년 전 ‘축의 시대’에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반성적 사유에 집중했다. 그것은 함께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행동강령을 만드는 것이었고 인간관계의 근본 원리와 자연법칙을 터득했다.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미덕(윤리)과 진리(과학)였다. 후일 명심보감은 말한다. ‘일일행선(一日行善)이면 복수미지(福雖未至)나 화자원의(禍自遠矣)이라’ 즉, ‘하루라도 선을 행하면 복이 비록 이르지 않을지라도 화는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오감으로는 알 수 없는 차원 높은 그 무엇, 즉 윤리적·과학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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