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7] 밸런타인데이는 민족 전통 명절이다
초콜릿을 먹지 못한다. 당뇨 때문이다. 조만간 또 약을 타러 병원에 가야 한다. 의사 선생은 언제나처럼 혀를 차며 말할 것이다. “역시 아무것도 안 하셨네요. 어쩌려고 이러세요.” 아니다. 나도 뭘 하긴 했다. 허벅지 근육을 기르기 위해 아파트 계단은 걸어 올랐다. 6층에서 숨을 몰아쉬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긴 했다. 한 건 한 거다. 밥은 현미로 바꾸었다. 콜라는 제로로 바꾸었다. 초콜릿도 끊었다.
초콜릿을 끊은 건 나로서는 대단한 결심이었다. 광화문에 가면 고디바 매장에서 진한 초콜릿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게 일상의 의식이었다. 아몬드가 들어있는 초콜릿 볼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초콜릿을 씹는 순간 오도독 부서지는 아몬드 맛은 무엇도 따라갈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문단을 미각적 고통에 휩싸인 채 쓰고 있다. 2020년 기준 육백만 당뇨인에 속하는 독자라면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받지 않기로 했다. 거짓말이다. 나는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80년대에도 밸런타인데이는 있었다. 그 시절에는 나처럼 사려 깊은(=나약한) 남자애보다는 지금은 금지된 아이스께끼 같은 장난이나 치던 애들이 초콜릿을 더 받았다. 강한 남자가 지배하는 미개하고 잔혹한 시절이었다.
매년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꼭 나오는 기사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족보도 없는 남의 나라 전통에 돈 낭비나 한다는 한탄이다. 아이러니다. 그걸 쓰는 기자도 밸런타인데이를 헛되이 두근두근 기다렸던 ‘요즘 젊은이’였을 것이다. 게다가 온 국민이 40년을 넘게 기념해 온 날은 그냥 민족 전통 명절이나 마찬가지다. 올해도 밸런타인데이를 근엄하게 꾸짖는 기사를 본다면 기자 이름을 기억하시라. 그는 나처럼 학창 시절 초콜릿을 거의 받아본 적 없는 양반일 것이다. 종종 어떤 기사는 기자의 오랜 유년기 트라우마로부터 생성되기도 한다. 달콤 쌉싸름한 업계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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