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죄’ 조선 여인들, 살기 위해 붓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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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한 줌 들지 않는 동굴, '사는 게 죄가 된' 여인 세 명이 숨어 속삭인다.
"사람들한테 죽는 것보다 산짐승한테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작은 인기척에도 꺼지길 반복하는 위태로운 촛불처럼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다른 어둠 속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차가운 돌바닥 위에 종이를 깔고 붓을 맞잡는다.
동굴을 형상화한 무대 세트는 무대 영상과 조명에 따라 깊은 숲속이 됐다가, 박씨가 몸을 숨긴 피화당이 되기도 하며 다채로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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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초연된 창작뮤지컬 ‘여기, 피화당’의 줄거리다. 17세기 병자호란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정절(貞節)을 잃었다는 이유로 이혼과 자결을 강요받는 3명의 주인공 가은비, 매화, 계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웅 소설인 ‘박씨전’을 함께 써내려가는 판타지를 그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 작품으로 뮤지컬 ‘라흐 헤스트’ 등을 쓴 김한솔 작가가 극작을 맡았다.
이야기의 핵심인 연대와 희망의 정서는 짜임새 높은 캐릭터들이 풀어내 진정성을 높였다. 세 여인의 ‘벗’이 되는 선비 후량은 귀향 여성들을 옹호한 실존 인물 최명길의 아들로 등장한다. 가은비에게 “죽어가는 백성보다 대의명분을 중요시한 사대부를 비웃는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하며 힘을 합친다. 국내 뮤지컬에서 공식처럼 사용되는 소모적인 러브 라인이 등장하지 않아 메시지가 한 줄기로 깔끔하게 모인 것도 강점이다.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박씨전’은 중소극장용 공연임을 잊게 할 만큼의 입체감을 제공했다. 이달 8일 공연에서 가은비 역을 맡은 최수진은 박씨 역을 연기할 땐 기존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서 구성지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전환하며 매끄러운 극중극을 완성했다. 의성어, 의태어를 활용한 판소리 재담 형식의 대목은 관객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동굴을 형상화한 무대 세트는 무대 영상과 조명에 따라 깊은 숲속이 됐다가, 박씨가 몸을 숨긴 피화당이 되기도 하며 다채로움을 더했다.
공연은 이야기의 배경으로부터 약 40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한 억압과 차별을 위로한다.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남겨지는 이 세상에 그 어떤 목소리도 잊히지 않도록” 연대하는 다섯 인물의 이야기를 ‘여기, 피화당’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의 삶도 언젠간 반짝이길 힘껏 소망하게 될 것이다.
4월 14일까지, 4만4000∼6만6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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