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사법에 의존하지 않는 적극행정 펼쳐야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2024. 2. 14. 0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음식점을 찾은 미성년자에게 점주가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고 술을 판매한 경우, 신분증 검사를 해서 성년임을 확인해 술을 판매했지만 미성년자가 신분증을 위조한 경우, 더 나가 미성년자가 미성년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술을 주문한 뒤 술이 나오면 본인이 미성년임을 밝히며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경우, 경쟁업체가 영업방해를 위해 미성년자를 사주해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경우 등 자영업자의 주류판매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경우 사안에 따라 다르나 원칙적으로 점주에겐 청소년보호법과 식품위생법 위반혐의가 적용된다. 청소년보호법 59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식품위생법에 따라 행정당국은 영업취소나 6개월 이내 영업정지를 할 수 있다.

미성년자가 술을 의도적으로 마셨지만 미성년자는 처벌하지 않고 술을 판매한 자영업자를 처벌하는 것과 아울러 영업정지를 통해 경제적 손실까지 부담토록 했다. 미성년자를 주류, 담배와 같은 유해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판매자에게 신원확인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강력한 형사적, 행정적 제재를 하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제재로 인해 자영업자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청 등 일선기관에서 영업정지처분을 할 수 있다는 재량규정을 기속행위로 운용해 제반 사정상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도 영업정지 처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더 나가 이 사안과 같이 형사제재가 규정돼 있어 검경에 고발된 경우 검찰에서 무혐의 결정을 받아오면 영업정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불합리해도 영업정지는 불가피하니 억울하면 법원에 가서 다투도록 하는 경우다.

이런 현상을 소위 '행정의 사법(司法) 의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책임의 이전 및 회피를 통한 타율적, 소극적, 면책적 행정의 경향으로 행정관료들이 이해관계가 걸린 예민한 사항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해 적극적인 처분을 하지 않고 최대한 보수적 해석을 하고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법원, 검찰 등 사법기관에서 다투도록 하는 경향을 말한다.

행정은 감사책임을 의식해 경직적, 보수적인 처분만 함으로써 법령에 대한 기계적 집행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권리구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개최된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검경에 의존하면 안 된다. 이건 책임 떠넘기기"라며 "법령 개정을 안 해도 할 수 있다. 검사도 기소유예할 수 있듯 행정당국도 이런 정상을 참작해 불이익 처분을 자제하라고 공문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후속조치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음식점에서 청소년 대상 주류제공 행위를 적발한 경우 청소년의 가짜 신분증 제시 여부, 영업자가 신분증 확인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등 사실을 조사한 후 행정처분 및 고발 여부를 신중히 결정하도록 요청했다. 또한 지자체의 행정조사 과정에서 CCTV 또는 제3자의 진술 등을 통해 영업자의 청소년 신분증 확인 사실이 입증된 경우 처분을 면제하고 처분기준도 영업정지 2개월에서 7일로 완화하도록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적극행정이 조속히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일선기관에서 자기책임하에 법령을 해석하고 처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행정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경직적인 감사책임을 완화하는 적극행정 면책이 활성화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규정한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미성년 보호라는 법익을 형사처벌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반행위로 인한 이득에 상응하는 경제적 제재만으로도 위반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 행정법규 전체적으로도 과감한 비범죄화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술법정책센터장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