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키운 ‘삼바’ 분식회계 조사[기고/최종학]
이번 사건은 2015년 삼성이 이 회장의 지분이 높은 제일모직 주가를 부풀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조작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제일모직의 자회사 삼바에서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국민이 분노할 만한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니다.
논란이 된 회계 처리는 합병 후 벌어진 일이라서 합병 전 제일모직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그러므로 검찰은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를 받아 이 회장 등을 기소할 때 이렇게 명확히 틀린 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다. 그래서 검찰이 기소할 때는 ‘삼성이 합병 비율을 사후 합리화하려고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주장이 살짝 바뀌었다. 외부에 널리 알려진 분식회계를 저지른 이유와 실제로 검찰이 기소한 내용이 다른 것이다.
논란이 된 회계 처리는 전문용어로 ‘지배력 변경 회계 처리’라고 불린다. 지배회사가 피지배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바뀔 때, 보유 기간 동안 장부 가치로 기록되어 있던 피지배회사 주식 시장가치 변동을 한꺼번에 기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피지배회사 가치가 많이 변했다면 큰 손익이 기록된다. 이 같은 지배력 변경은 드물지만 가끔 일어나는데, 금감원이 분식회계라고 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이 건을 분식회계라고 판단한 것이 얼마나 이례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삼바의 상장 전 재무제표를 조사한 공인회계사회는 이 회계 처리가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가 이 건을 최초로 문제 삼자, 금감원은 조사를 수행한 후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2017년 정권이 바뀌자, 금감원은 재조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분식회계”로 의견을 바꿨다.
참여연대는 “2015년 사업의 미래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해 평가를 할 수 없는데 기업가치를 5조 원으로 부풀려 평가해 막대한 이익을 적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바는 “2015년 말 약품 개발에 성공하고 판매 승인을 받았으므로, 사업 성공이 충분히 예상되고 신뢰할 만한 가치평가가 가능해졌다”고 반박했다. 금감원은 처음엔 참여연대의 주장을 되풀이했지만 삼바의 시가총액이 오히려 상승해 평가된 금액 5조 원을 훨씬 뛰어넘자 ‘가치를 부풀려 평가해 막대한 이익을 적었다’라는 말을 뺐고 ‘사업 성공이 불확실한데 가치평가를 했다’는 주장만 남겼다.
그러다 삼바 주가가 더 상승하고 사업 성공이 명확해지자, 금감원은 ‘바이오시밀러 약품 개발이 쉽기 때문에 2011년 회사 설립 시점부터 가치가 높다는 것이 충분히 예측됐고 신뢰할 만한 평가가 가능했다’며 처음 주장과 거의 정반대로 견해를 다시 바꿨다. 분식회계라는 답은 사전에 정해져 있고, 상황에 따라 논리를 끼워 맞추는 듯한 모습이다. 이 마지막 주장이 검찰이 기소한 분식회계의 핵심 내용이다.
이처럼 금감원의 주장이 자꾸 바뀌었으니, 다수의 학자나 회계사들이 “정치가 회계의 영역까지 나서느냐”며 강하게 반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 가지 주장 중 무엇이 더 합리적인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약품 개발이 쉽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다수 회계 전문가는 삼바의 견해만 옳다는 게 아니라, 이 견해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기업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국제 회계기준 취지에서 볼 때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이 판단도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본다.
복잡한 내용과 회계 처리를 공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린 재판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재판 결과를 보고 이 사건과 관련된 정치인이나 당시 금감원장 및 기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사과하지는 않겠지만 회계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금감원은 큰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규모 분식회계를 적발했다고 금감원이 발표하자 주가가 폭락해 주주들이 입은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좌우 누가 집권하건 관계없이, 정치는 정치인이 하더라도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 두었으면 하는 게 필자의 소망이다. 그래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일부나마 해소되어 소액주주들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삼성도 앞으로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은 피하고 회사를 더욱 발전시켜, 꾸준한 혜택을 계속 직원, 주주, 협력사 그리고 지역사회나 국가에 제공하기 바란다. 그것이 이 재판 결과를 바라보는 국민 대다수의 바람일 것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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