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그날의 줄넘기

2024. 2. 1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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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상점에서 파는 저금통은 그야말로 '돼지저금통'이었다.

뻣뻣한 고무로 된 다홍색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려면 등 쪽 투입구를 칼로 잘라내야 했다.

동전은 저금통 안에서 헐거운 소리를 내며 굴러다닐 뿐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언니가 내 손에서 저금통을 빼 든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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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상점에서 파는 저금통은 그야말로 ‘돼지저금통’이었다. 뻣뻣한 고무로 된 다홍색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려면 등 쪽 투입구를 칼로 잘라내야 했다. 옆구리에 복(福) 자가 양각되어 있거나 몸통이 짤따랗거나 황금색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기본형은 어쨌거나 돼지였다. 우리 집에는 그런 돼지저금통이 여러 개 있었다. 대부분은 동전 여남은 개를 짤랑대는 정도였고 오래된 전축 위에 올려놓은 저금통만 묵직했다. 아빠의 것이었다.
아빠의 저금통 근처를 나는 자주 배회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짧고 둔탁해지면 슬그머니 저금통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동전이 절반쯤 차 있을 때가 적기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와 달리 언니들의 귀가 시간은 늦었고 엄마 아빠는 공사다망했다. 나는 한낮의 텅 빈 집에서 전축 아래 쪼그려 앉아 저금통을 흔들기 시작했다. 냅다 흔들다 보면 투입구로 동전 끄트머리가 비죽 튀어나왔다. 그렇게 빼낸 동전을 들고 나는 동네 슈퍼로 뛰어갔다. 달고 차가운 것, 알록달록하고 새콤달콤한 것을 사 부지런히 입에 까 넣었다. 깐돌이가 50원, 달고나가 1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나는 열심히 저금통을 흔들고 있었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마음은 진즉 사라졌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금통부터 집어 들던 때였다. 동전은 저금통 안에서 헐거운 소리를 내며 굴러다닐 뿐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머리핀을 쑤셔 넣어 동전을 끌어내려다 둘 다 놓쳤다. 다급히 저금통을 흔들었지만 끄트머리가 두꺼운 머리핀은 투입구 근처로도 오지 않았다. 돼지 배를 가른 아빠가 머리핀을 발견하고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훌쩍거리며 동전 투입구에 눈을 대고 내 마음만큼이나 캄캄한 돼지 배 속을 들여다보았다.

언니가 내 손에서 저금통을 빼 든 건 그때였다. 언제 집에 왔는지 어디서부터 보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언니는 동전 투입구 옆면을 힘껏 눌러 틈을 벌린 뒤 저금통을 좌우로 느리게 흔들어 머리핀을 빼냈다. 아빠에게 머리핀을 들키는 것과 언니의 고자질 중 어느 쪽이 내게 더 치명적일까. 나는 또 다른 공포에 휩싸였다. 언니는 바닥에 내려 두었던 줄넘기를 챙겨 들더니 그대로 나가 버렸다. 내게 뭔가를 따져 묻지도, 혼을 내지도 않았다. 대문 밖에서 줄넘기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을 내리치는 규칙적인 소리가, 휘잉 휭 이단뛰기를 시도하는 소리가, 줄을 밟은 뒤 내는 짧은 탄식이 번갈아 들렸다. 활기차고 건강한 소리가 계속될수록 저금통을 흔들던 나의 조잡하고 음침한 소리가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저금통을 전축 위로 돌려놓았다.

생색도 조언도 고자질도 없었지만 나는 다시는 저금통에 손대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을 시간을 주는 것. 정말 중요한 것은 스스로 멈출 기회를 주는 것 아닐까. (물론 언니는 줄넘기를 빨리 하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줄넘기 소리를 종종 떠올린다. 그러면 틀림없이, 정직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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