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모방한 ‘등산로 강간살인’, 이 악순환 끊으려면

한겨레21 2024. 2. 1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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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너머n']인셀 테러 위기 ②
흉기테러·강간살인 등 잇따르자 ‘이상동기범죄’ 개념 도입하고 ‘혐오범죄’ 강조하는 등 검경 변했지만 법원은 여전히 인셀 범죄에 둔감
‘서울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살인예고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고 흉기까지 구매했던 이아무개씨가 2023년 7월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한국형 인셀’(온라인에서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생산·공유하는 이들을 지칭) 범죄가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사회가 이들을 오프라인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찌질이’ 정도로 낮잡아보는 사이, 일부 인셀은 여성혐오를 이데올로기로 삼은 급진화 과정을 거쳐 사람을 해쳤다. 특히 인셀 집단은 대중의 관심을 바라는 정치권·미디어의 이해관계와 ‘공생’하며 확장했다. (인셀 테러 위기 ① ‘은둔형 외톨이’ 아니다, 여성혐오 테러리스트다 참조)

‘묻지마 범죄’ 대신 ‘이상동기범죄’ 개념 도입했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의 대응은 어떠했나. 경찰은 2023년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범죄’로 명명하면서 판별 기준을 만들었다.무작위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하거나 사회를 향한 적대감 등 일반 대중의 상식선에서 납득되지 않는 범행 동기와 폭력성 등을 토대로 이상동기범죄를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기준은 여성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에 대응하는 데 미흡했고, 그러다보니 실제 수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이 혐오범죄임을 인식하면서 수사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경남 진주 편의점 사건 대응이 대표 사례다. 가해자 박아무개씨는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쇼트커트를 빌미로 “페미니까 맞아도 된다”며 폭행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당시 피의자 박씨는 본인이 ‘남성연대 회원’이라고 밝혔음에도 경찰은 그 사실이 범행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수사하지 않았다. ‘(신)남성연대’가 자주 쓰는 표현 중 “페미니스트는 패도 된다” 등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검찰은 나아간 태도를 보여줬다. 조선의 서울 신림역 흉기테러 사건 이후 온라인에 ‘살인예고’ 글이 이어졌다. 검찰은 이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분석 등을 토대로 이아무개씨의 게시글이 여성혐오 범죄 성격이 있다고 판단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도 덧붙여 기소했다. 진주 편의점 사건도 박씨가 평소 ‘페미니스트는 정신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등 여성혐오를 드러낸 사실을 범행 동기로 밝히기도 했다.

다만 관련 사건 재판을 모니터링한 입장에서 보면, 검찰이 ‘보도자료용 생색내기’에 그친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기소 단계에서 강조한 혐오범죄를 양형 가중 사유 중 하나인 ‘비난할 만한 범행 동기’ 요소 등으로 강력하게 부각하는 것을 목격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빠져나가기 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검사의 입증책임’인데, 범행 동기 역시 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가장 느리다. <한겨레>가 2018~2023년 확정판결을 분석한 결과, 여성혐오가 명시된 판결문은 11건에 불과했다. 11건 모두 여성혐오가 양형 가중 사유로 들어간 것도 아니다. 상당수는 피고인 쪽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심신장애’를 내세울 때 이를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는 데 그쳤다.

여성혐오가 온라인 공간에서 일상적이라 봐준다?

법원은 여성혐오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씨가 ‘살인예고’ 글을 올리기 전 2023년 3월부터 넉 달 동안 2096건의 여성혐오 게시물을 올려 불특정 다수 여성에게 공포를 줬다는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에 무죄를 선고했다(협박·살인예비 혐의에 대해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재판부는 “피고인이 작성한 글이나 댓글 중 폭력적 내용이 일부 있는데, 비중이 크지 않고 피해자 수가 특정되지 않았다” “피고인이 글을 올린 게시판(디시인사이드)에는 천박한 표현 등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피고인 글이 특히 더 불안감을 조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녀(한국여성) 죄다 묶어놓고 죽이고픔” 등이 이씨가 쓴 게시물 내용인데, 이는 해당 온라인 공간의 일상적 표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법원의 시각은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저지르던 남성이 사건 당일 재차 저지른 폭력으로 여성이 사망했을 때, ‘늘 저질렀던 폭력의 일환이어서 사망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살인의 고의를 부정해 선처했던 사례들과 일맥상통한다. 법원이 여성혐오가 동기로 작용하는 폭력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이처럼 둔감한 상태를 유지할 경우 여성혐오 범죄를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2024년 1월22일 ‘신림동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 피고인 최윤종의 1심 선고에서 늦게나마 여성혐오 범죄의 존재를 인식이라도 한 모습을 보여줬다. 단순히 성관계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피고인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성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정이 기저에 깔렸다고 판단한 것이나, 대낮 도심 등산로에서 발생한 불특정 여성 대상 범죄가 여성에게 공포를 유발함을 언급한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범행 동기에 대한 수사를 낡은 관점, 즉 주변(가족·지인 등)과의 갈등 등을 중심으로 진행했고, 검찰 역시 이 사건을 혐오범죄로 규정하지 않았던 까닭에 법원도 최씨의 여성혐오가 가정환경, 특히 여동생과의 사소한 마찰에서 발전한 것처럼 판단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판 과정에서 확인한 최씨의 온라인 활동 내용, 유사 강간살인 사건을 모방하며 범행을 준비할 때 작성한 메모 등을 보면 최씨의 범행은 국외 인셀 범죄와 매우 흡사함에도, 법원은 그를 오프라인 관계망 단절로 인해 좌절한 ‘은둔형 외톨이’ 정도로 판단했다.

‘누가 이 사건 모방할까’ 걱정되는 이유

“제일 두려운 것은 누가 이 사건 보고 따라 할까봐 좀 그게 제일…. 이거 보고 모방했다, 이런 일이 생길까 그게 제일 걱정이 됩니다.” 최윤종 1심 선고 직후 피해자의 오빠가 언론에 한 말이다. 최윤종이 일명 ‘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사건’을 모방해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힌 것처럼, 최씨의 사건을 모방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댓글 등으로 드러나는 여성혐오에 재차 상처받으면서도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 걱정하는 유족과 지인들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온·오프라인 관계망에서 이를 공유·강화하며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한국형 인셀에 더 늦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 이들이 일으키는 범죄를 더 이상 그들의 개인 문제, 즉 가정환경이나 정신적 문제 등으로 축소해 개별화해서는 안 된다. 테러는 이제 더 이상 총기 소지가 가능한 외국만의 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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