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의 말의 힘] 말이 아니라 사람을 뽑으니까
말의 힘은 이중적이다. 말은 사실과 진실을 전하지만, 가짜와 거짓을 퍼뜨리는 데에도 능숙하다. 그래서 말은 종종 비판의 소리를 듣는다. 처칠의 말이다. “진실이 바지를 입기도 전에 거짓은 이미 세상의 절반을 돌고 있다.” 즉각성, 전체성, 광속성을 추구하는 디지털 문명이 기술적으로 이를 거들기에 더욱 실감나는 말이다.
말의 전쟁인 선거가 시작되었다. 진실이 양말을 신기도 전에 거짓은 이미 온 동네를 몇 바퀴는 돌고 있다. 속도의 경쟁력에서 진실은 거짓을 이길 수 없다. 통상적으로 말의 전쟁이 끝난 뒤에 진실은 거짓을 간혹 이기곤 한다. 하지만 대개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난 뒤이다. 가련한 진실! 과연 지켜줄 수 있을까? 어렵다. 허락 없이 들어온 말의 진실성을 따지기도 전에 또 다른 말이 들어오기에. 도대체, ‘거짓’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아예 없지는 않다.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살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국은 말이 아니라 사람을 뽑는 것이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권하는 ‘에토스(ethos)’의 살핌이 바로 그것이다. 철학과 수사학을 공부해야 가능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사람을 보고 말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자 혹은 후대의 어떤 학자의 말이다.
역모를 꾸미는 사람은 그 말이 마음을 숨기고,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그 말이 가지를 달고 있으며,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은 그 말이 간명하고,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그 말이 많아지며, 마음이 좋음과 나쁨을 헷갈리는 사람은 그 말이 왔다갔다하고, 마음을 굳게 지키지 못한 사람은 그 말이 궁색하다(<역경> 계사전 하편 12장).
말만 놓고 당장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기에 사람을 보고 거짓으로부터 진실을 지키려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보여준다. 치열해지는 말의 전쟁에서 가여운 ‘진실’을 어찌해야 하나?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간명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어렵지 않다. 말에 마음을 숨기거나 단서를 달거나 말이 왔다갔다하거나 지조를 잃고 사욕을 좇는 사람이 대부분이므로.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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