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0만원 고가 처방의 딜레마 [죽음이 삶이 되려면]

2024. 2. 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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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아들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뇌종양으로 입원해 치료 중인 18세 고등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을 머지않아 잃게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환자가 사망한 지 2달이 지났을 때, 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상기 환자의 치료에 사용한 신약 항암제 비용을 환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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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게티이미지뱅크

"아들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뇌종양으로 입원해 치료 중인 18세 고등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을 머지않아 잃게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환자는 오른쪽 다리에 힘이 없어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MRI 촬영과 조직검사 후 가장 악성도가 높은 '다형성아교모세포종'으로 진단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종양이 너무 커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방사선치료 후 8개월이 지나자, 사물이 이중으로 보이고 언어장애도 생기면서 병세는 더 악화하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로 시도해볼 수 있는 치료법은 항암제인데 기존의 항암제는 뇌종양에는 효과가 없었다.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하는 환자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담당 의사는 최근 미국암학회에서 발표된 신약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일부 암 환자에게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 환자가 반응할지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아직 건강보험에서 급여 지원을 받지 못해, 약값만 한 달에 1,000만 원이 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아들을 보낼 수는 없다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아버지에게 담당 의사는 신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아버지는 돈이 얼마나 들어도 해보겠다고 했다. 환자 가족에게 신약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비용은 가족들이 자비로 부담하겠다는 치료동의서를 받은 후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는 치료를 다섯 달간 받으며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듯했으나 결국 악화해 사망했다.

환자가 사망한 지 2달이 지났을 때, 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상기 환자의 치료에 사용한 신약 항암제 비용을 환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환자 가족은 치료비로 인해 더욱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주변에서 임의비급여로 진료한 의료비를 되돌려받는 방법을 전해 들은 아버지가 민원을 제기한 것이었다.

자비 부담 동의서를 작성했음에도 병원은 보험급여기준을 초과한 '과잉 진료'로 약제비를 환급해줘야 했고, 담당 의사는 임의비급여로 약제를 처방한 내용에 대한 경위서를 제출해야 했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것이 스스로 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의료진은 대상 환자의 일부에서 생명 연장 효과를 보였다고 하는 신약 정보를 알려줘야 할까? 아니면 알려주지 말아야 할까? 진행기 암 환자에서 완치는 할 수 없으나, 환자 중 15%에서 수개월의 생명 연장이 기대되는 신약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조사에서 환자 가족 중 60%는 투약을 찬성했으나 40%는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신약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환자와 가족에게 높은 가격의 신약을 소개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는 일이 된다. 의료진은 의료기술의 발전에 대한 정보를 어느 선까지 제공하는 것이 윤리적인지, 환자나 그 가족은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살아있는 하루 혹은 한 달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료 현실은 비용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의 의료서비스보다 효과를 조금 개선하거나 부작용을 일부 줄이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진료 현장에 도입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 번 치료에 수억 원대의 비용이 발생하는 치료법이 적지 않다. 이 문제는 항암제에 국한되지 않고 의료계 전반의 딜레마가 되고 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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