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전격’ 발표들의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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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 노동·교육팀장 #전격: 번개같이 급작스럽게 들이침.
"정부가 ○일 정책을 '전격' 발표했다"고 쓰고 싶었다.
교육과 관련된 발표만 돌아봐도 1월24일, 교육부는 '늘봄학교'(초등 전일제)를 올해 1학기 2700개, 2학기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애초 2025년 전면 시행하려던 일정을 전격적으로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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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 | 노동·교육팀장
#전격: 번개같이 급작스럽게 들이침.
어딘지 호들갑스럽고 군사작전의 기색을 담은 단어라 기사에 적는 일이 드물지만, 요 몇주 자주 흔들렸다. “정부가 ○일 정책을 ‘전격’ 발표했다”고 쓰고 싶었다. 유혹에 넘어가진 않았다.
정책은 번개처럼 예측을 벗어난 시점과 규모로 번쩍였다. 교육과 관련된 발표만 돌아봐도 1월24일, 교육부는 ‘늘봄학교’(초등 전일제)를 올해 1학기 2700개, 2학기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학교를 정규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 전반을 책임지는 공간으로 다시금 정의하는 변화다. 애초 2025년 전면 시행하려던 일정을 전격적으로 앞당겼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2월6일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대입부터 2천명 늘린다고 했다. 현 정원 3058명이 5058명으로 늘어난다. 의사 하면, ‘사람 살린다’는 본래 소명보다 입시·직업 구조의 최상단을 먼저 떠올리는 부조리에 균열을 내겠다는 19년 만의 증원이다. 지난해 가을만 해도 1천명 수준 증원이 언급됐는데 그 규모가 전격 확대됐다.
흔적을 남겨야 하는 대통령 집권 3년차, 또한 총선의 해가 밝았음을 절감했다. 대선 캠페인으로 반짝 이목을 끌었던 그 정신, ‘좋아, 빠르게 가’의 뒤늦은 발현인가. 저의야 나중 문제고, 일단 여느 시민처럼 반가웠다. 육아 부담의 완화, 의사 부족과 편중을 해결한다는 취지는 각각 저출생과 고령화의 중요한 어느 대목을 건드리고 있다고도 여겼다.
#여파: 큰 물결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잔물결.
그런데, 이윽고 전격 발표가 미칠 여파들에 눈이 머물렀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최장 13시간을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이 나타날 터였다. 이들이 행복하려면 학교 안 교육과 돌봄의 질도 획기적으로 나아져야 한다. 늘봄학교의 내실을 좌우할 ‘인력’으론 학교 비정규직(기간제 교사와 공무직)이 언급됐는데, 그들의 처우는 전격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간 대책 또한 개학 3주를 앞둔 지금까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늘어날 의대생은 당장 1년도 채 남지 않은 입시를 거쳐 어느 대학에든 들어갈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선발되며,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의사가 되어, 어떻게 의료 공공성강화에 기여하게 될지 또한 전격 발표로는 알 수 없었다. 숫자와 의사 집단에 대한 엄정대응 기조가 주를 이뤘다. 학원가엔 ‘초등 의대반’ 개설을 알리는 표지가 나부꼈다.
중대한 전격 발표 앞에, 여파들 언저리를 맴도는 마음 같은 건 번개 치면 소스라치기나 하는 새가슴의 망상일까. 어쩌면 정책의 본질은 여파들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여파를 놓쳐 길 잃은 지난 전격 발표들의 기억 탓이다. 가령 2018년 최저임금 전격 인상은 단 2년(2018~2019년) 최저시급 1880원을 올리는 정책이었으되, 그 본질인 산업·노동 이중구조 개선에는 닿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에 놓일 영세소상공인 지원을 정책 부작용 대응이 아니라 본질로 여겼다면, 이들과 함께 지독한 갑을관계를 풀어내는 경제구조 개혁까지를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로 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봄학교랄지 의대 정원 확대 또한 그 본질이 몰아치는 속도감이나 증원 규모에 있을 리 없다. 늘봄학교는 어린이 누구나 사교육을 압도하는 최상의 공공 돌봄과 공교육을 차별 없이 받는 정책이라야 의미 있다. 의대 증원은 공공재로서 의료의 의미를 바로 세워야 개혁이다. 늘봄학교의 질을 좌우할 학교 인력과 공간 문제, 지역·필수의료와 연결된 의대생의 행로는 그 자체로 애초 정책의 핵심이다. 여파가 전격 발표보다 더 개혁의 본질이다.
‘전격’이라는 단어, 이 글에서만 열번 넘게 적었으니 원은 풀었다. 총선까지 또 번개 치듯 이어질 정책 발표 앞에 이제는 전격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파를 궁리하자고 다짐한다.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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