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글로벌 여권 파워
국민 전원이 훈장을 받은 작은 나라가 있다.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Malta)다. 세 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인 몰타는 인구 약 53만 명에 강화도만 한 크기인데 위치가 지중해 정중앙이다.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선박들에 인기 좋은 항구이고 고대부터 각광받던 곳이다. 1964년에 독립했지만 1816년부터 그때까지 영국령이어서 2차 세계대전 때 북아프리카를 노리던 히틀러와 이집트를 노리던 무솔리니가 거북해 했던 섬이다.
1941년 겨울이 오고 동부전선이 소강상태가 되자 이 참에 히틀러는 몰타를 손에 넣기로 한다. 북아프리카 장악에 필요했고 영국과 수에즈운하 사이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와 합세해 약 600기의 공군기로 몰타를 초토화했다. 그러나 몰타는 세계사에서 가장 심하게 폭격당한 섬이 되고도 그 공세를 이겨냈다. 몰타를 장악하지 못한 대가로 북아프리카로 가는 독일군 보급의 90%가 몰타 근거 영국 해군에 격침되었다. 영국 왕 조지6세는 섬 주민 전원에게 십자훈장을 수여했다.
필자의 학생 하나가 몰타로 이민을 했다. 크지 않은 돈으로 영주권을 내주는 나라다. 플러스 얼마 하면 여권도 준다. 몰타 여권이 중요할까 하지만 몰타는 유럽연합(EU) 멤버다. 몰타에 꼭 살아야 할 필요는 없고 유럽 어디서나 살 수 있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독일이나 프랑스 학교에 다닐 수 있다. 브렉시트 이전에는 영국 학교에도 다닐 수 있었다.
몰타는 이른바 황금여권 발급 국가다. 우리야 그렇지 않지만 EU 멤버인 몰타 여권만으로도 엄청난 신분상승이 되는 나라가 세계에는 한둘이 아니고 돈을 나라 밖으로 옮기고 싶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EU는 몰타의 이런 사업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런저런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남미의 페루 남부에 그 유명한 '잉카 땅의 왕관' 마추픽추 유적이 있다. 마추픽추는 해발 2430m에 위치한 15세기 잉카의 유적이다. 건설하고 80년 정도 쓰다가 버려진 것으로 추정한다.
마추픽추 하면 항상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필자의 한 선배 교수님이 유적 탐사를 갔는데 마침 우루밤바강 홍수로 관광객들이 다 고립되어 버렸다고 한다.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미군 해병대 헬기들이 날아왔다. 미국 여권을 보여주면 탑승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만 태우고 야속하게 가버리더란다. 아마도 위급상황이 아니었던 만큼 다른 나라 국민에게까지 정부의 돈을 들여서 호의를 베풀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조지 프리드먼의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2011년 9월 어느 날 그곳 국경을 건넜다. 우크라이나 쪽에서 슬로바키아로 들어가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슬로바키아 보초는 유럽연합으로 진입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특히 경계했다. 국경 보초들은 냉전시대 보초들 못지않게 거칠었다. … 여성 보초가 달려와서 우크라이나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막으려고 했다. 나는 미국 여권을 흔들어댔다. 그러자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자리를 떴다. 나는 다시 1975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미국 여권이 체포될지 극진한 대접을 받을지를 결정했던 때 말이다."
해외에 나가면 어떤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지가 대우와 안전을 크게 좌우한다. 심지어 불법 무장단체들조차도 어떤 여권에는 조심한다. 나치 독일 때의 유럽에서는 인종과 실질적인 배경에 관계없이 단지 여권이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기도 했다.
한국 여권은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의 숫자를 기준으로 집계하는 헨리 패스포트 인덱스에서 2024년 현재 핀란드, 스웨덴과 함께 2위에 올라 있다(193개국). 5위인 스위스, 7위인 미국보다 높다. 독일, 일본, 프랑스 등과 한 점 차이다. 한국 여권이 국제사회에서 우대받는다는 소식에 기분만 좋아질 일이 아니다. 안전과 생명도 지켜준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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