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집단안보’ 무지에 유럽 정상들 폭발…“오로지 러시아 이익”

노지원 기자 2024. 2.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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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각) 독일 최대 무기제조 업체 라인메탈의 새 공장 기공식에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아르민 파퍼거 라인메탈 사장,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재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 부담 의무를 다하지 않은 동맹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한 ‘폭탄 발언’을 두고 유럽 정상들이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유럽이 단결하며 군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2일(현지시각) 도날트 투스크 신임 폴란드 총리와 만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집단방위) 공약은 조금도 거리낌도 없이 없이 적용된다”면서 “그 누구도 유럽의 안보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토의 집단방위 공약에 조건을 거는 “상대성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면서 이는 “오로지 러시아의 이익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나토 헌장 5조는 회원국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전체가 함께 대응한다(집단방위)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22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뒤 유럽은 실질적인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댄 북유럽, 옛 소련에서 독립한 발트 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오랫동안 러시아의 침략에 시름해온 폴란드 등이 체감하는 위협은 다른 나라에 견줘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 온 이유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제국주의가 유럽의 공동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유럽연합과 나토에서 우리가 서로를 지지하는 이유”라면서 “폴란드의 안보 역시 우리의 안보다”라고 했다.

이날 앞서 투스크 총리와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은 “안보 강국”이 되고 “대서양 동맹에서 기둥”이 되는 데에 더 집중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작전과 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유럽이 미국에 지나치게 안보를 기대선 안 된다며 자율성 확보를 위한 유럽군 창설을 주장해 왔다.

투스크 총리 역시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라는 유럽의 이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러시아보다 군사적으로 약할 이유는 없으며 (무기) 생산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우선순위”라며 유럽연합이 스스로 “군사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토 동맹의 결속을 해치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경계하면서 유럽이 더 단결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같은 날 독일·프랑스·폴란드 3국 외교장관은 파리 외곽에서 만나 이른바 1991년 설립된 3국의 연합으로 현재는 사실상 돌아가지 않는 ‘바이마르 삼각동맹’을 재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옛 기억’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이던 2018~2020년 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이 2014년 약속대로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에 써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해 왔다. 2020년엔 6월엔 이를 압박하려 ‘주독 미군’을 감축한다는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한편, 이날 독일 최대 무기 제조업체인 라인메탈은 니더작센주 하노버 북부에 새 공장을 세우면서 3억달러(3천984억원)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공장이 생산을 시작하면 연간 포탄 20만발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공식에 참석한 숄츠 총리는 “이번 투자로 독일 연방군과 유럽 협력국에 포탄을 독립적, 영구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유럽이 단기간에 국방력을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르민 파퍼거 라인메탈 사장은 탄약 재고가 현재 “텅 빈”상태라면서 “나토와 대적해 싸우려는 이”에 대항해 준비하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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