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만 전쟁때 한국군 동원 가능…가장 비극적인 안보 전개에 대비해야 [매경포럼]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2. 1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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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는 24일이면 만 2년이 된다. 예상은 처음부터 모든 게 틀렸다.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를 타격하는 전면전은 없을 것이라 했고, 개전 직후에는 곧 끌날 것으로 봤다. 러시아 군부와 갈등을 빚은 용병대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모스크바 진격을 선언하자 ‘전쟁으로 흥한 자, 전쟁으로 망한다’며 푸틴 정권 종말론도 나왔다. 뚜렷한 근거나 정보 없이 각자 열심히 ‘희망회로’만 돌린 탓이다.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우리도 예상치 못한 뼈아픈 일을 겪고 있다.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북한이 밀월관계에 들어간 것이다. 막강한 러시아군이 북한 무기를 빌려쓰고 이를 기회로 러시아 기술이 북한 군비 증강을 돕는 ‘나비효과’를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자신감 커진 북한은 우리를 상대로 ‘통일 불가’ ‘불변의 주적’ ‘제1의 적대국’ ‘영토 점령’ 등 막말 잔치중이다. 지정학자인 로버트 카플란이 “자신감 넘친 푸틴은 비극적으로 사고하지 않아 쉽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비극을 모르는 오만함이 (교착된) 지금을 불러왔다”고 했는데 예측 못한 비극을 우리도 맞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일 미국 방송인과의 인터뷰에서 “합의를 통해 전쟁이 곧 종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개인 희망일 뿐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동부 영토를 잃고 전쟁을 끝내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과거에도 푸틴은 종전(終戰) 하고 싶은데 우크라이나 반대로 어렵다고 실토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의 무기 공급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도 유사한 요구를 받는 강도가 세질 것이다. 국산 탄약과 미사일이 미국을 거쳐 전쟁터에 보내지고 있는 것은 러시아도 파악중인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한 포탄 규모가 유럽 각국의 지원 물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전했다. 이를 간파한 러시아는 우리를 종종 협박한다. 지난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에 군사기술을 지원하면 한국은 어쩔텐가”라며 으름짱을 놓기도 했다. 푸틴은 대북 기술 제공을 정당화하고자 우리의 무기 수출 내역을 요구할지 모른다.

미해군의 알레이버크급 유도탄구축함 ‘존 핀’호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동중국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미7함대는 구축함이 이날 대만해협을 지났다고 밝혔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중동전 개입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승인이 교착되면서 바이든 정부는 밖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서방 내 증가하는 ‘우크라이나 피로증’까지 감안하면 한국의 역할 요구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북한 무력 도발 같은 본 게임은 시작도 안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선봉대에 설 확률이 높다. 중국이 대만 봉쇄를 위해 고안한 ‘반접근·지역거부(A2AD·anti-access area denial)’ 전략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A2AD는 오키나와에서 필리핀을 잇는 제1 도련선(중국 해군의 대미 방어선) 안으로 미군 항모전단 진입을 둥펑(DF) 탄도미사일 등으로 막는 것이다. 이에 맞서려면 도련선 안쪽의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이 동원될 수 있다. 그 때 만일 북한 도발이 겹친다면 한국 안보는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은 2022년 9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주한미군이 투입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대신 그는 “주한미군 병력 일부가 대만 사태에 투입되더라도 한미동맹은 대북 억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달 현 주한미군사령관인 폴 러캐머라는 한미연구소(ICAS) 주최 심포지엄에서 “대만 침공에 대비해 한국군 지도부와 한국의 역할을 논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사령관이나 지도자들은 그 어떤 것과 관련해서도 비상 계획을 세운다”며 대비 중임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부터 대만까지 이런저런 정황들이 17세기 중반 두 번에 걸쳐 ‘나선(羅禪) 정벌’에 조선군이 동원됐던 상황과 유사하다. 러시아의 남침을 막으려는 청나라 요구를 받들어 조선의 총·포수들을 외부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기억이 오버랩 된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이긴다면 우리에게 안보 비용 분담 요구는 커질 것이다. 지난해 한미가 합의한 핵협의그룹(NCG) 운영과 확장억제 강화 전략도 트럼프 집권 1년 만에 파기된 이란핵협정(JCPOA)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정파를 떠나 국제문제 대응에서 한국 역할론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의 잇딴 막말로 전쟁 가능성이 1950년 한국전 이후 최대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신년 대담에서 “북한 주장만 따라서 판단하기보다 다양한 팩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한 “(북한이) 불합리하고 비이성적 결론을 낼 수도 있는 세력이란 걸 전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다행이다. ‘현명한 정치가’라면 최악의 상황 전개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비극을 피하려면 비극적으로 사고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카플란의 말 그대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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