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유인촌 장관은 왜 퇴짜 맞았나?

권종오 기자 2024. 2. 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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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


한국 스포츠 행정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체육인들의 '비토' (Veto) 대상이 되고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전국 시도체육회장협의회(회장 이원성 경기도체육회장·이하 협의회)는 지난 7일 유인촌 장관이 초청한 간담회에 불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간담회는 설 연휴 직후인 14일에 17개 시도체육회장과 전국 시군구체육협의회 회장을 포함해 18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지만 협의회는 "의견 수렴 결과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 장관이 초청한 간담회에 시도체육회장들이 참석을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그 파문이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쉽게 말해 체육 행정과 예산을 관리 감독하는 최고 수장이 대화도 나누기 전에 퇴짜를 맞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유인촌 장관은 설 연휴 이후에 충청북도 진천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각 종목 대표팀 지도자들을 만나기를 원했지만 일선 지도자들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인촌 장관이 체면을 구긴 배경에는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과의 첨예한 갈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두 사람의 대립이 해결되지 않는 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그럼 유인촌 장관은 왜 상당수 국내 체육인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됐을까요? 대한체육회 사정에 정통한 A 씨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대한체육회를 쓸데없이 자극하는 잇단 언급이 화근이 됐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대한올림픽위원회(IOC) 분리 검토 발언이다. 대한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IOC)가 분리되면 체육회의 위상이 어떻게 되는지 모를 리가 없는데 장관이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 됐다. 또 이미 국회를 통과해 예산 확보가 확정됐던 스위스 로잔 국외연락사무소 설치 건도 유 장관 본인이 필요 없다고 반대했다가 얼마 안 가 이를 번복하며 승인해주면서 문체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이번 시도체육회장협의회 면담 불발 건도 자충수로 볼 수밖에 없다. 협의회가 현실적으로 이기흥 회장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이 회장을 '패싱'한 채 15일 대한체육회 정기대의원총회 하루 전에 만나려고 한 것이 '전시 행정'이나 일종의 '꼼수'라고 비춰진 것이다. 이기흥 회장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짓지 않고 다른 체육인들을 상대로 우회 전략을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하책으로 생각된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현재 굵직한 이슈를 둘러싼 대립 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감정싸움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19일 강원도 강릉에서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개회식이 열렸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오른쪽에는 국내 주요 인사들이 주로 배치됐습니다. 그런데 이기흥 회장은 한 사진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습니다.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 개회식


강원 조직위 관계자는 SBS와 통화에서 "귀빈석 자리 배치는 문체부와 조직위가 협의해 결정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체육회 측은 "이기흥 회장은 청소년동계올림픽 개최국의 대한체육회장이자 현 IOC 위원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하는 몰상식한 짓을 저질렀다. 대통령 옆에 유인촌 장관이 앉았고 그 옆에는 이에리사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공동위원장, 피겨 여왕 김연아, 장미란 문체부 2차관이 차례로 앉았는데 이 회장은 제대로 보이지도 앉는 곳에 자리를 줬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 그동안 대부분의 체육 행사에서 이기흥 회장은 문체부 장관 옆자리에 주로 배치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청소년 개회식을 보면 분명히 스포츠 이벤트인데도 강원 지역 국회의원들보다 더 먼 쪽에 배정됐습니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는 '홀대'를 받았다고 느낄 만한 대목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사실상 이에 대한 반발로 맞불을 놓았습니다, 체육회는 지난 6일 열린 제28차 이사회를 열어 의전 계획을 확정했는데 정부 장관급 인사가 체육회와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할 때 장관급은 사무총장·선수촌장이, 차관급은 본부장이, 국장급은 부장이 영접하게 했습니다. 지난해 장미란 문체부 제2차관이 진천선수촌을 방문했을 때는 장재근 선수촌장이 영접했는데 이제부터는 한 급 아래인 훈련본부장이 하도록 변경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15일 정기 대의원총회를 열어 문체부의 행태와 유인촌 장관을 강하게 성토할 예정입니다. 이어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인 3월 20일 국회 앞 광장에서 체육인 5만 명이 모인 가운데 국무총리 산하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가 아닌 정부 조직 차원의 기구인 국가스포츠위원회 설립을 위한 법률 제정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정면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사진=연합뉴스)

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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