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 그림을, 나를 무단 학습한 AI를 고발한다”…할리우드의 봉기

임지선 기자 2024. 2. 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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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AI의 습격, 인간의 반격] </span>할리우드 창작자 7인 인터뷰
AI, 창작물 학습해 ‘적당한’ 이미지 공급…창작자들 소송
인공지능(AI) 피시(PC)와 휴대전화가 잇달아 등장한 2024년, 기업들은 ‘인공지능 확산 첫해’가 될 것이라 단언한다.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처음 본 인류가 열광했던 2023년은 지났고, 이제 본격적인 ‘인공지능 일상화’의 시대가 열린다는 이야기다.

노동자에게는 어두운 전망이 드리워진다. 지난 1월14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블로그를 통해 “인공지능은 전세계 일자리의 40%, 선진국 일자리의 60%에 영향을 줄 것이며, 고숙련 노동(high-skilled jobs)에 더 영향이 크다. 극단적으로는 해당 직업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900여개 직업군 중 3분의 2가 인공지능으로 자동화돼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겨레는 2024년 ‘생성형 인공지능’ 확산 앞에 선 인류의 위기와 도전을 살피기 위해 미국 할리우드부터 실리콘밸리와 시애틀까지 현지 취재했다. 인공지능을 시작으로 반도체·바이오 등 전세계적인 기술의 격변 현장을 전달한다. 편집자

미국 할리우드에선 생성형 인공지능의 위협을 감지한 창작자들의 봉기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작가·배우 조합의 파업에 이어 올해는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 콘셉트 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군이 행동에 나설 태세다.

한겨레는 ‘반 생성형 인공지능’ 투쟁의 최전선에 선 7명의 할리우드 창작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조용한 살인자”라며 “기존 창작자들의 글·그림·사진 등을 마구 학습해 비슷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생성하는 인공지능 때문에 급격하게 일자리가 말라붙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생성형 인공지능 반대 국제 연대 투쟁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창작자들은 1월1일 새벽에 ‘지옥’을 봤다고 한다.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원하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쓰면 곧바로 그림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의 대표 주자 ‘미드저니’가 그간 무단으로 학습했다는 ‘예술가 4700명’의 명단이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공개됐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너무도 분노했다.” 1월23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카를라 오르티스의 말이다.

“3년 안에 우리 직군은 사라질 것이다. 할리우드 예술가들은 매일 실존적인 위협을 느낀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나와 같은 창작자들의 작업을 어떤 동의도 없이 학습한 뒤 이를 토대로 우리의 작업을 복제하며 빠르게 성장한다. 기자인 당신을 포함해 전세계 창작자들에게 모두 해당하는 문제다.” 오르티스는 “혼자 분노하지 않고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고, 전세계와 연대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로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닥터 스트레인지’, 게임 ‘파이널 판타지 16’ 제작에 참여한 ‘콘셉트 아티스트’(감독과 소통해 영화나 게임 등의 디자인과 분위기 등을 그림으로 구상해내는 직종)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지난해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예술가 3명 중 1명이기도 하다.

그가 생성형 인공지능을 접한 건 2022년 4월이다. 챗지피티가 세상에 나오기 7개월 전이다. 그는 우연히 ‘이상하고 멋진 인공지능 예술’(Weird and Wonderful AI Art)이라는 누리집을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예술가의 이름과 그림이 올려져 있었다. 누리집엔 “이 그림들을 바탕으로 이미지 생성 연구 중”이란 문구가 있었다. 카를라는 명단에 오른 친구들과 함께 ‘내 그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2022년 하반기로 가면서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달리(DALL‑E)와 같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이 대거 등장했다. 인공지능의 할리우드 침공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 셈이다. “나와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예술가의 작품이 동의 없이 사용됐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투자가 몰릴수록,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의 출처는 비밀에 부쳐진다는 느낌이었어요.”

지난해 1월 그가 미드저니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은 이달부터 심리가 본격 진행된다. 그는 “수많은 증거를 확보했기에 100% 승리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콘셉트 아트 협회와 함께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유럽의 창작자들과 생성형 인공지능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실태조사와 연대 서명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월14일과 15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예술 감독 캉 레의 집 등에서 6명의 할리우드 창작자들을 잇달아 만났다. 그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느낀 ‘위협’을 쏟아냈다. 이즈음은 마침 생성형 인공지능 붐을 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시가총액 1위에 오르던 날이다.

에미상 수상자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명탐정 피카츄’ 등의 영화와 각종 게임을 만든 레 감독은 “미드저니가 학습한 예술가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다. 내가 거대한 데이터 세트의 일부가 됐다는 생각에 답답증을 느꼈다”며 “그들은 내 그림을 훔쳐가 돈을 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소송을 제기해 그들에게서 약간의 보상을 얻어낸다 해도 회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예술학교 ‘아트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예술 감독 셰이 샤츠는 “한 학생이 인턴십을 하기로 한 게임 회사에선 생성형 인공지능의 여파로 직원의 90%를 해고하고 인턴십도 취소했다”며 “선생이자 아빠로서 싸움에 나선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예술감독조합(아트 디렉터스 길드)은 오는 3월 생성형 인공지능의 위협을 논의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토르: 러브 앤 썬더’ 등 영화와 게임 분야의 콘셉트 아티스트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추유진씨는 “할리우드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에 올린 뒤 이를 본 제작사의 연락을 받아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곤 한다”며 “우리 작품을 함부로 긁어가 제3세계 국가에서 ‘데이터 세탁’을 한다는 생성형 인공지능 회사 앞에 창작자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적당한 수준’의 그림을 그려주는 데 만족한 제작사가 늘면서 새 작업을 제안하는 전화도, 보수도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이러한 위협이 할리우드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마이크 야마다는 “광고업계 종사자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오픈에이아이(OpenAI)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그 분야에서 창의적인 작업을 해오던 이들의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매슈 커닝햄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른다. 그는 자동차 전문 산업 디자이너이자 ‘스타트렉: 피카드 시즌3’ 등 영화 속 미래 모습을 구성해온 아트 디렉터다. 그는 “이제 어떤 제작자도 대본을 시각화하는 작업에 예술가를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며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들이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문제제기에도 침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아바타2’의 수석 크리처 디자이너 재커리 버거는 최근 예술감독조합이 꾸린 인공지능 태스크포스(AI TF)에서 일러스트레이터 분과를 맡고 있다. 그는 “샘 올트먼과 같은 이들에게 저작권이 있는 창작물은 사용할 수 없게 한다면 생성형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서로의 작업을 훔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막을 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챗지피티를 만든 오픈에이아이는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의 내용은 물론 양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오픈에이아이 방침’은 생성형 인공지능 산업계의 ‘규칙’처럼 굳어진 상태다. 김예원 스탠퍼드대 교수(경영학)는 1월22일 한겨레와 만나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현재로선 정부와 정치권”이라며 “책임 있는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공론화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2024년 인공지능 확산의 첫해, 인류는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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