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인류애 상실시키는 상사의 저런 막말, 당연히 '괴롭힘'이다

심영구 기자 2024. 2.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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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오피스] (글 : 이진아 노무사)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직장생활 5년 차에 이른 A는 어느 날 어머니의 암 진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A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정기검진과 항암치료받는 날에 어머니와 병원에 함께 가는 것이었다. 바쁜 탓에 쓰지 않고 쌓인 연차가 많은 것이 위안이었다. A는 그럼에도 주변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병원 가기 전날엔 야근을 하면서까지 다음날 본인의 빈자리가 문제되지 않도록 업무를 정리해두고 가려고 애썼다. 동료들에 대한 괜한 미안함에 야근수당도 제대로 신청하지 않았다.

동료들도 A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A가 부단히 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A에게 다들 애쓰지 마라, 본인들이 알아서 하겠다, 그러다가 병난다, 위로와 걱정이 담긴 말들을 전했다.

유독 그 상황을 불편해하는 건 팀장이었다. 팀장은 전체회의 날 A가 연차를 썼다는 걸 알게 되자 푸념조로 직원 개인사에 이렇게까지 해주는 회사가 어디 있냐, 다들 좋은 회사 다니는 줄 알라며 빈정댔다. A의 어머니 병원 스케줄 때문에 다른 직원이 본인 연차를 뒤로 미루고 A가 연차를 우선적으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하자, B에게 연차를 왜 양보하냐, 안 써도 되는 연차를 쓰려고 했던 거냐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항암 약을 바꿔서 보다 힘든 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A는 너무 늦기 전에 가족여행을 다녀와야겠단 생각을 했고, 3일의 휴가를 쓰겠다고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몇 시간 후, 연차 신청을 확인한 팀장이 A 씨를 자리로 불렀다. 그리고 A 씨에게 그간 많이 참았는데 한마디 해야겠다며 말을 꺼냈다. 지금 어머니가 뭐 돌아가시길 했냐,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유난인 거냐, 회사가 어디까지 A 씨 편의를 봐줘야 하냐... 팀장의 거친 말들이 이어졌다. A는 팀장이 쏟아내는 말들을 받아내기 힘들어 그 자리를 바로 피했고, 주변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들은 보다 못해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회사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팀장은 연차를 쓰고 싶은 날에 다 쓸 수 있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 지금까지 내내 연차를 마음대로 쓰니 그게 회사의 배려였다는 것조차 몰랐던 거 같다고 도리어 화를 냈다. A가 업무를 하는 날에도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업무집중도가 매우 낮아져 있었고, 이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수선해졌다고 했다.

반면, 동료들은 조사 과정에서 팀장이 A에게 해주는 배려는 없었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A는 그저 자신의 연차를 사용했을 뿐이고, A의 기존 업무가 전혀 줄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려받았다고 볼 부분이 없다고 했다. 팀장이 A가 없는 자리에서 A에 대한 험담들을 하여 A가 마치 개인사 때문에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는 직원처럼 비치게끔 하였으나, 실제 실무자들은 A가 업무 차질을 빚은 적도 없었고, 야근을 해서라도 자기가 맡은 일들을 다 책임있게 했다고 했다. 팀의 과업이 애초 계획에서 뒤틀어지거나 수행도가 떨어지는 일도 없었고, 팀 분위기가 안 좋아진 건 오히려 팀장 때문이라고 했다. 


'갑갑한 오피스'의 지난 연재들을 통해 간간이 언급해 온 바와 같이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위압을 주는 언행을 하는 것 그 자체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소지가 충분하다. 더 나아가 합리적인 사유 없이 연차의 자유로운 사용을 막는다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연차 부분을 제외한다면 팀장이 A에게 행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일까. 당연하지 않을까. A가 개인사로 인해서 어떠한 업무사고를 발생시키거나 사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왜 유난이냐는 말은 그 자체로 폭언이다. 설령 문제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직원의 개인사를 들먹이며 문제삼는 것은 상사의 정당한 업무지휘권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 A에게는 욕설과 비교해도 덜하지 않은 불쾌함과 모욕감을 느꼈을 문제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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