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시청률만 잡으면 끝?…‘막장’ 대세·개연성 잃고 단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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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장면은 채널에이(A)와 티브이엔(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에 나온다.
1은 제목부터 막장 냄새 물씬 풍기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 2는 오랜 연인들의 공감대를 사고 있는 채널에이 '남과 여'로, 각각 티브이엔과 채널에이에서 방영 중이다.
현재 티브이(지상파, 종편, 티브이엔 기준)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10편(일일, 주말 제외)을 섞어놓으면 방송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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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이 암 투병 중인 아내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다. 아내는 과거로 가서 남편과 친구한테 복수하고 자신의 삶을 바꾼다.
#2. 7년 사귄 연인은 사랑과 권태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 각자의 삶을 살지만 달콤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힘들다.
이 두 장면은 채널에이(A)와 티브이엔(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에 나온다. 장면과 방송사를 짝지어본다면? 1은 중장년층이 많이 보는 채널에이와 맞겠고, 2는 상대적으로 젊은 채널인 티브이엔과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나 정답은 반대다. 1은 제목부터 막장 냄새 물씬 풍기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 2는 오랜 연인들의 공감대를 사고 있는 채널에이 ‘남과 여’로, 각각 티브이엔과 채널에이에서 방영 중이다.
방송사마다 뚜렷했던 드라마 색깔이 흐릿해지고 있다. 티브이엔과 제이티비시(JTBC)는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소재에 주목하고, 제이티비시를 제외한 종합편성채널은 어른들을 위한 아침·일일 드라마 스타일에 집중해왔는데 이런 구분이 허물어졌다. 현재 티브이(지상파, 종편, 티브이엔 기준)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10편(일일, 주말 제외)을 섞어놓으면 방송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부분 사극, 불륜(혹은 이혼)으로 소재의 차별성도 사라졌다. 잦은 억지 설정으로 비판받던 티브이(TV)조선 드라마의 만듦새가 제이티비시를 넘어서는 현상도 나타났다. 한 케이블채널 드라마 사업팀 관계자는 “방송사마다 드라마 소재가 비슷해진 것은 2020년 전후부터인데, 최근에는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티브이가 ‘늙은 매체’가 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스트리밍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고 젊은 세대가 티브이를 떠나면서 채널 간 경쟁도 무의미해진 것이다. 한 지상파 예능 피디는 “과거에는 지상파와 케이블·종편의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티브이와 뉴미디어로 구분되는 신구 매체의 싸움이다. 오티티 활성화 이후 그 구분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짚었다. 티브이에서 주요 시청층 타깃 전환은 2015년께 예능에서 시작해 드라마로 이어졌다. 중장년층이 관심 가질 만한 불륜, 이혼, 아이, 경력 단절 등의 소재가 꾸준히 등장했다.
방송사마다 비슷한 소재를 선택할 수 있다 해도 그걸 풀어가는 새로운 방식마저 사라졌다. 2020년만 해도 제이티비시가 이른바 고급 막장극인 ‘부부의 세계’로, 에스비에스(SBS)의 개연성 없는 막장극인 ‘펜트하우스’와 차별화했다면, 방영 중인 ‘끝내주는 해결사’(제이티비시)는 불륜과 이혼이라는 뻔한 소재를 개연성 없이 끌고 간다.
또한 구성의 묘미를 살린 복잡한 작품보다 쉽고 간단한 이야기가 주로 방영된다. 방영작 중에서 시청률 10%대로 사랑받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밤에 피는 꽃’(문화방송)도 쉬운 내용과 전개가 특징이다. 주인공은 마음먹은 건 전부 행동에 옮기고 성공한다. 미스터리물을 가미한 ‘나의 해피엔드’(티브이조선)와 ‘세작, 매혹된 자들’(티브이엔)은 호평과는 별개로 시청률은 각 2~3%대, 3~6%대로 널을 뛴다.
티브이 드라마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공 전략을 학습한 결과라고도 풀이한다. 한 지상파 간부 출신 프리랜서 드라마 피디는 “‘모범택시’ ‘닥터 차정숙’부터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 수년간의 성공작을 보면 내용이 쉽고 주인공이 신나게 질주하며 시청자를 대리만족시킨다”고 평가했다.
점점 개연성을 잃고 단순화되는 티브이 드라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인데 현재는 참신한 시도 없이 쭉쭉 뻗어 나가는 전개로 이목만 끄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특징에 따라 잠깐 주목받는 것일 뿐, 티브이 드라마 회생의 신호라고 볼 수 없다”며 “티브이 드라마도 자기 혁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장과 발전은 어렵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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