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태국 ‘BL 드라마’의 도전
태국에 처음 부임한 2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까떠이’(여성성을 가진 남성)를 마주치면 꽤 당혹스러웠다. 긴 생머리, 미니스커트, 킬힐로 치장하면서도 삐죽한 콧수염과 수북한 다리털 또한 굳이 감추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흡사 자웅동체 같았다.
태국 인구 중 본래 자신이 타고난 성(性)과 스스로를 다르게 인식하는 이른바 ‘제3의 성’ 비율은 15%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까떠이가 많은 이유로는 땅에 본래 음기가 많다거나 비닐과 플라스틱 등이 성 염색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등 여러 해석이 있다. 개인적으로 인접국 미얀마(옛 버마)와 오랜 전쟁을 벌이면서 징용을 피하려고 남아에게 여아 옷을 입혀 키웠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이렇다 보니 태국에선 BL(Boy’s Love)과 GL(Girl’s Love)로 불리는 동성애 콘텐츠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1990년대 일본 ‘망가(만화)’에서 유래한 BL·GL은 오랫동안 일부 팬층만 즐긴 ‘하위 문화’였다. 하지만 최근 음지에서 벗어난 듯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5편에 불과했던 태국의 BL 드라마는 2022년 56편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GL 드라마도 작년 태국에서 10편 이상 제작됐다.
지난해 3월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의 게이 드라마가 넥스트 K팝일까?’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태국 BL 드라마가 홍콩의 느와르 영화, 일본의 애니메이션, 한국의 K팝에 이어 아시아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태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이미 일본을 비롯해 중국·대만·유럽·남미 등으로 태국산 BL 드라마가 팔리고 있고, 2020년 기준 수출액이 15억바트(약 56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동남아 지역의 대표적 드라마 수입국이었던 태국이 BL과 GL을 앞세워 수출국으로 변신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 업체도 작년 봄 방콕에서 4편의 한·태 합작 BL 드라마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동성애 콘텐츠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당장 태국산(産) BL 드라마가 한국 TV에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낯설고 생소한 장르라도 적극적으로 상품화하는 태국의 문화 전략을 K콘텐츠 파워를 이어가야 하는 우리로선 잘 살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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