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먹고 죽자는 ‘먹방’
허리띠 푼 만큼 해이해진 입
신체·문화적 건강에 악영향
최소한의 경고 필요한 시점
차력(借力)은 목숨을 건 묘기다. 공업용 철근을 목으로 눌러 구부리거나 트럭에 묶은 밧줄을 입에 물고 끌어당기는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대단한 무공이 필요하다. 이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북한이나 동남아 전통 시장 같은 곳에서는 차력쇼가 열린다. 몇 년 전 태국에서 불붙은 꼬챙이를 입으로 삼키는 남자를 봤다. 내 목구멍이 다 얼얼해지는 장관이었다. 어릴 적 기억에 그들은 대개 약장수들과 함께하곤 했다. 물론 눈속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쇼가 시작되기 전 “애들은 가”를 반복하던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 따라 하면 다치니까.
작금의 차력쇼는 단연 ‘먹방’이다. 먹는 방송. 대패 삼겹살 20인분을 혼자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수제 버거 수십 개를 거의 마시듯 식도로 넘기는 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타고난 몸뚱이가 필요하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재된 이 기현상(‘Mukbang’)의 종주국은 한국이다. 이 세계에서는 대식(大食)이 기본이다. 이를테면 몸무게가 약 48㎏인 유튜버 ‘쯔양’은 짜장면 여덟 그릇과 군만두와 콜라 두 병을 예사로 먹어치운다. ‘히밥’이라는 예명의 과식 전문가는 라면 스물다섯 봉지를 끓여 먹는다. 계란에 떡국 떡까지 넣어서.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일 터이나, 계속 그렇게 먹다가는 오래 못 살 것이다.
이들의 위대(胃大)한 차력은 소셜미디어로 실시간 전파된다. 절대로 1인용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대형 솥에 한가득 끓여 비빈 ‘불닭볶음면’ 따위를 배경으로 이들은 구경꾼을 불러 모은다. 이들은 ‘푸드 파이터’라고도 한다. 음식과 싸운다니.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위장에 쑤셔넣는다고 봐야 한다. 이런 괴식의 의학적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도저히 소화할 수는 없으니 삼키고 토한 뒤 영상에서 편집하는 방식으로 연명하다 들통나 업계에서 버림받은 인물도 있고, 건강이 악화돼 실제로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다. 최소한 “애들은 가”라는 안내 방송은 필요하다.
정부가 한 차례 대책 마련에 나서기는 했다. “폭식 조장 미디어·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할 계획”을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했다. 비만 관리 대책의 하나로, 영상에 주의 문구 정도를 넣자는 자정 요구였다. 강제성도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식생활 규제’라는 비판에 막혀 유의미한 후속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과거 이빨로 캔맥주를 찢어 마시던 왕년의 차력왕 배우 정동남처럼, 이제 유명 먹방인들은 유튜브를 넘어 지상파 TV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술방’까지 치고들어왔다. 먹방에 술이 합쳐진 것이다. 소주를 병째 원샷하는 건 귀여운 수준이다.
콧구멍까지 한껏 벌려 미어질 듯 음식을 넣고 우물거려야 “먹을 줄 안다”고 손뼉 치는 사람이 늘수록 정량(定量)에 대한 예의는 줄고 있다. 어푸어푸 수영하듯 고갯짓하며 국수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는 ‘면치기’가 유행할수록 대대로 전수돼 온 밥상머리의 품격은 멀어지고 있다. 19세기 한 프랑스 미식가는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을 설명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 설명 방식이 ‘어떻게 먹느냐’로 바뀔 시점이 됐다. 폭식 먹방을 가만 보고 있자면 도리 없이 그들의 배설량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지독한 비애를 야기한다. 그 어떤 양분도 되지 못하고 한 무더기 똥이 돼버린 음식처럼, 우리의 관심이 너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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