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새만금엔 없고 ‘팜 주메이라’에는 있는 것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2024. 2.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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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계획 없이 일단 땅만 만들어… 아직도 비전 보이지 않아
팜 주메이라, 땅 가치 높이려 물과 접하는 면적 많은 야자수 모양
낮은 주거용 건물 지어 비싸게 매각… 창의적 공간 ‘패턴’이 경쟁력
일러스트=이철원

새만금은 33.9㎞의 방조제를 만들어서 291㎢의 간척지와 118㎢의 호수를 만든 프로젝트다. 20년 넘게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팜 주메이라는 두바이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총 면적은 5.7㎢다. 면적상 팜 주메이라는 새만금의 51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프로젝트다. 그러나 경제적 이득은 새만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프로젝트다. 팜 주메이라의 고급 빌라들은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유명인들에게 분양이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간척 사업인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새만금은 정량적으로 접근했고, 팜 주메이라는 정성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새만금은 409㎢의 ‘부동산’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땅에서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냥 우리는 방조제를 지을 기술이 있고, 그곳에 최소한의 방조제 건축으로 큰 땅을 만들 수 있어서 거기에 지은 것처럼 보인다. 새만금 프로젝트는 1991년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는 2006년에도 그 땅을 무슨 용도로 사용할지 논의하는 회의에 여러 차례 불려간 적이 있었다. 정확한 계획 없이 일단 만들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우리는 공간을 얼마짜리냐, 얼마나 크냐의 부동산 가치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치를 만드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어떤 모양의 공간이냐, 어떤 쓰임새이냐로 결정 난다.

팜 주메이라는 하늘에서 보았을 때 야자수 모양으로 만들어진 인공 섬이다. 이를 흉내 내서 강원도에 한반도 모양으로 섬을 만든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런 모방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따라 한 짝퉁 프로젝트다. 팜 주메이라가 야자수 이파리 모양으로 긴 땅을 좌우로 뻗어나가게 한 데는 바닷물과 접하는 면적을 늘리기 위함이다. 사막 기후에 있는 두바이에서는 가장 가치가 높은 땅이 물과 접한 땅이다. 이를 위해서 아파트 발코니에는 큰 공사비를 들여서 수영장을 만든다. 두바이 바닷가 땅은 이미 누군가의 차지가 되었다. 새로운 바닷가 땅을 만들기 위해 간척 사업이 필요했다. 이때 해안가의 길이를 최대한 길게 하면 할수록 면적당 땅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러니 좁은 폭으로 길게 땅을 만든 것이다. 이곳은 간척 사업지라 지반이 약해서 고층 건물을 짓기 어렵다. 낮은 층수의 주거용 건물들을 짓는 것이 경제적이다. 주거 공간은 방에 햇볕이 들고 통풍이 되어야 하니 건물의 폭이 좁다. 그러니 좁고 긴 땅에 해변을 많이 가지게 되는 땅의 모양이 가장 효율적이다. 이러한 필요들이 다 종합되어 야자수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팜(palm) 주메이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사람들은 누구나 그 이름을 들으면 ‘야자수 섬’이라는 시적인 상상력이 넘치는 땅을 떠올린다. 덕분에 비싸게 땅은 매각되었고 현재는 더 큰 제2의 팜 주메이라가 진행 중이다.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질이 중요하다. 질을 만드는 힘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것이다. 맨해튼과 뭄바이는 모두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맨해튼은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인 세계적인 도시지만 뭄바이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멋진 도시는 아니다. 뭄바이는 항상 교통 체증으로 꼼짝 못하는 곳이지만, 맨해튼은 지하철로 이동하고, 공원과 벤치가 많이 있는 인도를 걸을 수 있는 도시다. 공간의 ‘패턴’이 두 도시의 생활양식을 결정하고, 생활양식은 도시 경쟁력을 결정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지구상에 아무리 많은 탄소 유기체 ‘원시 수프(primordial soup)’가 넘쳐났다 해도 그 안에 세포라는 패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은 패턴이고, 그 패턴이 건축에서는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예쁜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꿈꾸며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팜 주메이라는 그것이 있었고, 새만금은 없었다. 그것이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에 따라 그에 적합한 패턴을 구상하는 건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건물을 짓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패턴을 만들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후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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