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이대남, 일그러진 이름
시급 44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학내 시위를 펼친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을 재학생이 고소한 사건이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주로 점심시간에 집회를 벌였다. 소음으로 일부 수업과 학생의 자율학습에 방해가 생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학생은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졸업생들은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연세대 출신 법조인 26명은 후배들의 소송이 부적절하다며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무료변론에 나섰다. 얼마 전 법원은 재학생 2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며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재학생들은 항소의사를 밝혔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이대남' 담론이 20대 남성 전체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한 것은 연세대 안에서도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돌출적 행동이다. '이대남'이란 공동체 의식 없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왜곡된 공정감각을 가진 일부 20대 남성을 지칭하는 용어여야 한다. 그들만의 일그러진 이름이다.
한 설문에서 이들은 대졸자와 고졸자간, 명문대와 비명문대 출신간, 남성과 여성간 임금격차가 합당하다고 응답했다. 개인의 권리, 능력주의, 공정함을 내세우는 이들의 태도에는 모순이 있다. 첫째, 개인의 권리에서 개인은 오직 자신을 의미한다. 타자가 개인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수치화한 스펙만 능력이라고 여기며 경험과 전문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셋째, 공정함을 주장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간과한다. 이들은 환경보다 개발이 중요하다고도 답했다. 옹졸하고 근시안적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는 기성 꼰대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소송을 한 학생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사는 청소노동자들의 노조활동으로 인해 왜 학생들의 공부가 방해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사회공동체의 평등한 구성원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누는 저급하고 천박한 계급주의가 적나라하다. 저 말을 풀면 "내가 낸 등록금으로 먹고사는 노예 주제에 감히 주인에게 대들어"다. 공부 좀 잘해서 연세대에 들어간 걸 자신이 타인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오만한 특권으로 착각한다. 연세대에 다니는 건 미래를 위한 과정이지 인생 최대 업적이 아니다. 그나저나 등록금은 정말 본인이 내는지 궁금하다.
"청소노동자의 월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들은 바로는 월급이 300만원에서 400만원 정도로 알고 있다"는 말은 어리석고 비겁하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출처조차 불분명한 풍문에 기대 함부로 발화하면서 청소노동자들이 약자가 아니며 그들의 행위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장기적으로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고도 했는데 옹색하고 빈약한 주장을 메꾸느라 아무 말이나 갖다붙인다. 트라우마 운운은 하찮은 엄살이다. 이들은 희생한 것도 없고 박탈당한 것도 없으면서 아주 약간의 불편함만 생기면 자신은 약자라고 떼를 쓴다.
구조가 착취와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알면서도 구조에는 저항하지 못한다. 구조 앞에선 철저히 꼬리를 내리고 기어들어간다. 문제의 근원인 학교에는 항의하지 못하고 진짜 약자인 청소노동자들을 괴롭힌다. 강자 밑에 굴종하고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게 청년인가. 부끄럽지 않은가.
청소노동자들의 무료변론을 맡은 선배는 후배를 준엄히 꾸짖으며 말했다. "원고의 면학을 위해 학교의 새벽을 여는 학내 구성원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돈을 내면 주인이라는 인식은 천민자본주의다. 내 일상의 행복과 소중한 꿈들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 그들의 희생이 사라지는 순간 내가 누리는 것들은 땅 밑 캄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버린다. 얼마 전 경북 문경의 육가공공장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두 소방관의 명복을 빈다.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한 학생도, 순직한 김수광 소방장도 모두 20대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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