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취하지 않는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2024. 2. 1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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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주말 일본 도쿄도의 세타가야구 골목. 저녁 8시쯤 보랏빛 네온사인이 켜진 가게 앞에 젊은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이 아니다. 이곳은 저녁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아이스크림숍 '21시의 아이스크림'이다.

본인에게 술이 딱 맞지 않아 잘 안 마시지만 분위기 때문에 마시고 나면 달달한 게 먹고 싶어서 온 20대 여성부터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사진을 보고 1시간 정도 차를 몰고 방문한 20대 커플 등 다양한 고객이 줄을 서 있다.

'21시 아이스크림'은 개업 약 3년 만에 전국 40개 점포 규모로 늘어난 인기 나이트 아이스크림 체인점이다.

내점하는 손님은 주로 20~30대라고 한다.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찾아오는 고객이 늘어나는데 1차 술자리를 마치고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나이트 아이스크림이 확대되는 이면에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의식변화는 무엇일까.

일본 후생노동성의 그동안 조사에 따르면 주 3일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음주습관율'은 2003년 20대 남성이 20%, 여성이 7%였으나 몇 년 전인 2019년에는 각각 13%, 3%일 정도로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조사내용을 보면 20대는 '술'을 가성비와 시간낭비의 취미로 인식하며 비용이 많이 들고 건강을 해치거나 술에 취해 실수할 위험이 높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의식의 변화가 나이트 아이스크림 가게 인기 상승 등의 결과물로 명확히 나타난 것이다. 이밖에 홋카이도를 거점으로 한 'GAKU'는 삿포로 특유의 '시메(마무리) 파르페' 문화를 전국으로 확산해 현재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도시에서 9개 나이트 파르페 전문점을 운영한다.

최근 일본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 단어가 있다.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트렌드', 즉 무알코올 맥주, 저알코올 음료 등을 마시며 의도적으로 술을 멀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덕'에 맥주업계를 비롯한 주류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도쿄 메구로에는 무알코올, 혹은 저알코올 음료를 메인으로 판매하는 카페가 있다. '로알코올릭 카페 마르크'는 취하지 않고 기분 좋을 정도로만 알코올음료를 마시고 싶은 사람으로 붐빈다.

시부야의 또 다른 술집 '스마도리바 시부야'는 주류회사인 아사히가 지난해 6월부터 운영 중인 곳인데 20~30대 젊은 손님의 발길이 이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칵테일의 알코올도수를 골라서 주문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알코올도수는 0%, 0.5%, 3% 가운데 선택이 가능하다.

이처럼 2030을 중심으로 알코올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가운데 주류업계는 무알코올 및 저알코올 음료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실제로 마트 등의 주류코너에 과거에 비해 알코올도수가 낮은 음료가 크게 다양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위스키에 소다수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을 뛰어넘어 맥주에 소다수를 섞어 마시는 비어볼이 인기를 얻을 정도다.

이런 추세는 수제 주류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양조장에서 만드는 크래프트 콜라의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레스토랑에 술을 제공할 수 없게 된 지역 양조장들이 잇따라 '지역 콜라'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일본 술 만들기의 노하우를 살려 향신료와 현지 식재료를 사용한 콜라가 인기가 많아 공급이 달릴 지경이다. 사람들이 술을 멀리함에 따라 콜라는 전통 양조장의 새로운 먹거리가 됐다.

356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기업 야에가키주조(효고현 히메지시)가 지난해 8월 '라라라콜라'를 발매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일본 술 만들기의 노하우를 살려 콜라에도 수제 발효 쌀 추출물을 사용한다. 양조장에서 만든 콜라는 설탕이나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고 보리 전분을 당화해 부드러운 단맛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고 자랑한다.

아직은 생소한 단어인 술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에 우리도 미리미리 대비해야 할까.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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