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길진균]난무하는 ‘심판론’,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집권 중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은 대개 정권 심판이냐 아니냐의 싸움, 즉 중간평가의 프레임(구도) 속에 치러졌다.
전통적 프레임인 야당의 정권 심판론(창)과 여당의 국정 안정론(방패)의 대결은 없다.
운동권 심판론도 야당을 운동권이란 틀에 가둬 고립시키겠다는 프레임 전략의 일환이다.
'정권 대 운동권', 쌍심판론으로 선거 구도가 굳어지면 정권 심판론이 희석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심판해 달라는 與野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 ‘검찰 독재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무능”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국민의힘은 ‘야당 심판론’을 외친다. 더 구체적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득권 386 청산”을 주장한다. 운동권 심판론도 야당을 운동권이란 틀에 가둬 고립시키겠다는 프레임 전략의 일환이다. ‘정권 대 운동권’, 쌍심판론으로 선거 구도가 굳어지면 정권 심판론이 희석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여기에 설 연휴 시작과 동시에 이낙연, 이준석 공동대표 체제의 ‘개혁신당’이 출범했다.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잠시 접어두자. 주목할 점은 개혁신당의 출현으로 쌍심판론에 더해 ‘양당 심판론’이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신당은 신당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기득권 양당 체제를 그대로 방치해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 나라를 위해 양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다.
얽히고설킨 3당 3색의 ‘심판론’이 난무하면서, 각 당이 꼬리를 물며 서로를 심판해 달라고 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앞다퉈 상대의 패배를 위해 투표해 달라는 ‘부정적 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선 한동훈 이재명 이준석 등 여야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전면에 섰다. 패배한 쪽은 치명상을 입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승리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라면 뭐라도 쓸 태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당은 대의보다는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며 끊임없이 주판알을 튕긴다. 대다수 후보들도 그에 맞춰 줄서기와 이합집산만 고민한다. 1년 전에 끝냈어야 할 선거구 획정이 감감무소식인 것도 이들의 손익계산 탓이다. 선거판이 “저쪽을 심판해야 한다”는 외침으로 가득 차면서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참신한 인사들의 목소리는 공명을 일으킬 공간을 잃고 있다. 거기다 복잡한 프레임 속에 유권자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놓고 또 고민해야 한다.
누구나 총선 때가 되면 멋지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당과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황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희망은 이뤄지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누가 더 비호감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선거가 펼쳐지고 있다. 설 연휴 기간 발표된 한 언론의 패널조사에 따르면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79%, ‘정치 이야기가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61% 등으로 나타났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가 깊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총선 결과에 따라 ‘내 삶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내 가정의 경제, 내 아이에게 물려줄 나라의 앞날이 달려 있다. 선택의 기준은 간단할 수 있다. 먼저 정치를 잘한 정당이 있다고 판단하면 두 표 다 행사하면 된다. 다음으로 정치를 못했거나 못할 것같이 생각되는 정당이 있다면 그 당을 뺀 정당에 두 표를 찍거나 한 표씩 나눠 찍으면 된다. 잘 못하는 정당을 키워주는 것만큼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에 해가 되는 선택은 없다. 정치혐오에 빠지는 대신 유권자 한 명이 던지는 표가 얼마나 아픈지 알려줘야 할 때다. 아울러 최악의 정치를 만든 장본인들은 상대 심판을 유권자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반성하는 모습부터 보이는 것이 옳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