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배승민]마음 아픈 아이들 급증, 학교 ‘조기 상담체계’ 강화해야
중증 악화되기 전 치료 골든타임 놓치면 안 돼
‘위클래스’ 교사 처우 개선-전문성 강화 시급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는 다방면의 분석과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의학적 질병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모든 병, 특히 정신의학적 질병은 예방과 조기 발견이 중요한데, 뇌가 발달 중인 아이들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아이들을 오냐오냐 키우라는 말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살아 있는 존재인 이상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다만 아이의 발달 수준에 비해 과도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는 잘 다루는 법을 터득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보고 배울 대상인 어른들부터 먼저 마음 관리를 잘하여 건강한 상태인 것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전제 조건일 것이다. 다만 어른들의 정신건강 관리까지 모두 다루기에는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우선 아이들이 조기에, 보다 더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의 상담 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많은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아직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상당 시간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곳이 바로 학교다. 따라서 다수의 아이들에게 일관된 방향으로 접근하려면 학교를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교육부에서는 2009년부터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위해 위(Wee)클래스를 비롯하여 위센터, 위스쿨, 병원형 위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양적 체계는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과 부모들은 ‘상담받으면 다들 알고 수군거려요’, ‘밖에서 상담받고 싶어도 수업을 빠질 수가 없어요’, ‘상담 선생님이 자주 바뀌어요’ 등의 이유로 제도를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실시하는 또 다른 제도인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역시 정확한 문제를 잘 찾아내지 못한다는 비판과, 반대로 작은 어려움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게 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런데 이 검사는 정밀진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선별을 위해 실시하는 일차적인 간이 평가 방법이므로, 위의 비판들은 검사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여 생긴 오해로 보인다. 이러한 선별에서 놓친 부분들은 교사 평가 및 부모 상담, 위(Wee)프로젝트 등을 통해 보완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보완 시스템이 부실하다 보니 선별 검사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개선안은 위클래스 상담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동반된, 전문성 강화 및 소진 방지 시스템의 구축이다. 이렇게 확보된 안정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보다 쉽게, 초기에 상담을 받고, 질병이 의심되는 경우는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전문 학회와 협력하여 지역의 병원과 연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병원 치료는 고사하고 상담의 시작조차 쉽지 않다. 어렵게 결심해도 상담이나 진료를 위해 수업을 빠지는 것, 부모가 일을 잠시 멈추고 동행하는 것 등등 진행 단계마다 장애물이 존재한다. 사회적 인식을 통해 질병 결석, 진료 동행을 위한 가족의 근무 조정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겠다.
“예전엔 그런 것 없이도 애들 잘 키웠다”는 말들은 당시의 영아 사망률을 망각하고, 그 어려운 시기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이미 쓰러져가는 아이들에게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어른들의 모진 채찍질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마음의 병은 나약해서 생긴 것이라는 편견이, 아픈 아이들이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회를 만들었다. 앞에서 살펴본 어려움들을 속히 개선하여, 개입과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정신건강이 중증으로 악화된 후에야 아이들이 병원에 실려 오는 안타까운 상황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미래를 희망한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방위비 안내면 러 나토침공 독려할 것”
- 의사 집단행동 예고… 대통령실 “의대증원 돌이킬수 없어”
- 공공기관 사칭 스미싱 20배 폭증… 내 보이스피싱 ‘방어력’은?[인터랙티브]
- 與텃밭 김천 “대통령말에 껌뻑 안죽어” “참모 온 이유 있을것”
- 친명-친문 내전 부평을 “배신자 청산해야” “친명팔이 행패”
- [단독]“베란다 끝에 모녀가” 119 오기전 불길 뛰어든 경찰
- 기름진 음식이나 야식을 주 3회 이상 먹는다
- 한동훈 “개혁신당은 위장결혼”…유승민 포용에 부정적
- 조국, 文만나 “창당”… 민주 “중도층 이탈 우려” 곤혹
- 국민의힘, 하태경·이혜훈·이영 몰린 서울 중·성동을 후보 재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