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전술 클린스만, 깜깜이로 뽑았다… 작년 감독선임기구에도 당일 통보
“받아들여지는 의견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거길 가야 하나요?”
최근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한 위원에게 회의에 참석하느냐고 묻자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협회는 이번 주 내로 전력강화위원회를 열어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과를 평가할 계획이었다.
더 문제는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 대표팀 감독. 그는 지난 10일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8일 밤 입국한 지 이틀 만이다. 클린스만이 평가 회의에 참석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감독 없이 아시안컵 성과 평가를 하는 자리가 될 수 있는 상황. 그러자 일부 위원이 ‘그런 회의를 왜 여느냐. 가야 하냐’고 반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력강화위원회는 2017년 12월 만들어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후신(後身)이다. A대표팀을 비롯한 연령별 대표팀 사령탑을 물색하고, 팀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낸다. 지금은 박태하(56) 포항 스틸러스 감독, 최윤겸(62) 청주 FC 감독 등 6명이 위원이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마이클 뮐러(59·독일) 위원장이 새로 취임한 뒤 기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협회 관계자는 “위원들은 사실상 뮐러 위원장이 협회 고위층과만 소통하고, 위원들은 허수아비처럼 여겨서 잔뜩 뿔이 나있다”고 했다.
수장이 바뀐 위원회는 첫 임무인 감독 선임부터 삐걱댔다. 지난해 1월 25일 뮐러 위원장이 취임한 뒤 대면 회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상견례를 제외한 화상 회의가 2차례 있었다. 대면 회의보다 발언권도 적었다. 게다가 진척 사항을 알 수도 없었다. 뮐러 위원장이 보안을 이유로 어떤 감독과 접촉하고 있는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위원은 “전임이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는 모든 후보 포트폴리오를 펼쳐놓고 위원들끼리 갑론을박했다. 누군지는 알아야 의견을 내든 말든 할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뮐러 위원장은 끝내 후보군조차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판곤(55·현 말레이시아 감독) 위원장이 이끌었던 2018년 위원회는 리그 우승 경험, 월드컵 예선 통과 경험 등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위원들과 수시로 의견을 공유한 끝에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 감독을 낙점했다. 벤투 감독은 2022년 카타르에서 역대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2월 27일, 뮐러 위원장은 위원회 소집이 오후 4시에 있을 것이라고 당일 공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통보했다. 위원들은 몇 차례 의견 개진이 거부당했던 탓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뮐러 위원장은 권한이 없고, 위에서 정한 감독을 그대로 통보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위원들 사이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소집으로부터 30분도 지나지 않아 클린스만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다는 보도 자료가 기자단에 배포됐다.
감독 선임 뒤에도 전력강화위원회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정기적으로 모여 대표팀 운영에 대한 논의를 한다. 실제로 벤투 감독은 2019년 전력강화위원회와 회의를 거쳐 당시 18세였던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을 A대표팀에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클린스만이 지휘봉을 잡고 난 뒤에는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시간과 장소까지 정했으나 며칠 전 클린스만 일정 때문에 취소되기도 했다.
클린스만은 임기 내내 ‘무(無)전술’이란 비판을 받으며 이번 아시안컵에서 장담했던 우승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손흥민(32·토트넘), 이강인, 황희찬(28·울버햄프턴),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 등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들을 이끌고도 한 수 아래 상대와 매 경기 졸전을 펼쳤다. 대회가 끝나자 클린스만을 경질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클린스만 감독 계약 기간은 북중미 월드컵까지. 2년 4개월 남아있다. 클린스만을 중도 교체하면 위약금으로 70억원가량을 물어줘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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