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사제 축복받은 동성 커플 “비로소 존재 인정받은 느낌”
동성 결혼 인정할 때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 있어”
“지난 한 달 동안 느낀 건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예요. 조심스럽지만 고민하는 다른 동성 커플 신자에게 축복을 권하고 싶어요.”
유연(36·활동명)이 지난달 20일 파트너와 함께 축복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지난해 12월 교황청이 동성 커플에 대한 사제의 축복을 허용한 후, 국내에서도 동성 커플을 대상으로 한 사제의 축복 사례가 나왔다.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알려진 ‘첫 축복’이다. 경향신문은 교황청의 성명 이후 축복받은 두 커플을 지난 11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캐나다에서 2013년 결혼한 40대 여성 부부인 크리스(활동명)·아리(활동명)와 내년 미국에서 결혼할 예정인 여성 퀴어 커플 유연·윤해(37·활동명)는 지난달 20일 가톨릭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이들의 모임 ‘아르쿠스’ 신년 미사 후 이승복 신부에게서 축복을 받았다. 동성 커플의 축복을 공식 인정한 교황청의 선언은 ‘이성 간 결혼만을 인정하는 교회의 교리를 훼손하는 것이므로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없다’던 2021년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7일 인터뷰에서 “부도덕한 기업가에 대한 축복에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동성 커플 축복에 반대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했다.
유연은 “축복 중 기도문을 듣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며 “처음으로 내 존재를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 커플로서 차별 이전에 나 자체에 대한 인정도 못 받는 기분이었다”며 “이전에 교황께서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메시지를 냈다는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보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들에게 이번 축복은 ‘하나의 공동체로 교회에서 인정받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크리스는 “둘이 함께 축복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계는 있다. 교황청은 동성 커플 축복이 결혼에 대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크리스는 “(축복을 받는 것은) 큰 진전이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동성혼 법제화 등 사회의 변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톨릭의 변화는 차별받고 소외돼온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있다. 크리스는 “우리에게 축복기도를 한 신부님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축복이 있었던 미사 당일에는 여러 교구와 수도회에서 신부 6명이 참석했다. 유연은 “축복도 받았으니 언젠가 성소수자 커플도 성당에서 결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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