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나에게 노동이란
누구는 노래를 했고 누구는 악기를 연주했다.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는 사람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느라 진지한 사람, 혓바닥을 이용해 컴퓨터에 스토리를 입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집 제목은 <이것도 노동이다>. 말하고 싶은 바가 선명하다.
그것도 노동이라고 맞장구치기는 어렵지 않다. 무언가 해내는 인간의 보편적 활동을 우리는 노동이라 불러왔다. 가수, 연주자, 감독, 작가와 같은 직업의 이름으로 그런 활동을 분류하듯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노동은 꽤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사진 속 인물들에서 자꾸 ‘장애인’이 보이는 것은, ‘장애’와 ‘노동’을 이질적으로 느끼게 하는 오랜 습속 탓이다. 일-‘할 수 없는(dis-abled)’ 몸으로 간주되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온 역사.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는 ‘그것이 노동’이라고 인정하는 제도였다. 2020년 서울시에서 시작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2023년 10개 지자체에서 1300여명이 일하며 확대되는 추세였다.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채용하는 목표 아래 노동과 가장 멀리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불러냈고 이들은 출근과 퇴근이라는 시간표로 기꺼이 자신을 밀어넣었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4년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는 일자리를 그냥 없애지 않았다.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체장애인은 택시 승객을 응대하고, 발달장애인은 세탁물을 정리하고, 뇌병변장애인은 저작권 침해 콘텐츠를 검색하고, 청각장애인은 네일 아티스트를 하는 식이다.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듯하지만 상품설명서를 달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욱 많은 여성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때 정부는 ‘여성직종’을 제안했다. 1981년 근로복지공사는 ‘여성직업훈련 실시에 관한 연구’를 했다. ‘촉각적 지각, 연속적 주의 작업, 주관적 작업’ 같은 것을 ‘여성에게 유리한 점’으로 꼽고, ‘여성에게 불리한 점’으로 ‘운동속도, 단시일 내의 일시적 주의 집중, 이론적 사고’ 등을 꼽으며 여성직업훈련 직종을 선정했다. ‘여성직업능력개발’은 여전히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직종에 집중되어 있고, ‘노인’ 일자리 사업도 다르지 않다. 다른 모든 자리에 부적합하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존엄을 깎아내린다. 동시에 어떤 노동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 질문할 기회는 봉쇄되었다. 여성은 언제나 일-하고 있었지만 ‘경제활동 참여’가 ‘노동’의 의미가 될 때 수많은 노동은 비가시화되었다. 주어진 시간에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을 얼마나 만들어내는지가 유일한 질문이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지향과 목적을 밝힌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한 것도 상품인 사회에서 노동이 상품이 아니기란 쉽지 않다. 농사를 짓건, 자동차를 만들건, 청소를 하건, ‘노동-하다’와 ‘상품-되다’ 사이를 자의로 벗어나기 어렵다. 권리중심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지만 상품이 되지는 않겠다는, 어쩌면 불가능한 요구에 도전하며 복직투쟁 중이다.
권리중심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권리 생산 노동’이라고 말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담긴 권리가 실현되도록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장애인의 권리 이상을 창출하고 있다. “나에게 노동이란?” 권리중심 노동자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진심, 새로운 도전, 꿈, 살아낼 힘, 자유, 만남, 이야기, 책임감, 배움, 희망, 사회에 한 발짝 나가는 것….’ 이런 단어들을 상품의 포장지로 남겨둘지, 상품이 아닌 권리로 바꾸어낼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노동의 권리를 다시 쓰는 거대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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