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우의 풀뿌리] 유가족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지난 2월7일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대표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후선박을 관리하지 않아 인명을 희생시킨 업무상 과실치사, 업무상 과실선박매몰 혐의를 대표에게 적용했다. 재판부가 회사의 책임을 물었음에도 재판을 방청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유가족들은 기뻐하지 않았고 재판 후 항의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규명보다 보상이 앞서는 나라
유조선을 개조해 화물선으로 쓰던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31일 갑자기 침몰했고, 24명의 선원 중 22명이 사망했다. 회사 실소유주인 폴라리스쉬핑은 사고 즉시 인근 해역 국가들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고 12시간이 지난 뒤에야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배는 침몰해 바닷속 깊이 가라앉았고, 선원들은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기업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침몰의 이유와 선원들의 시신이라도 찾을 방법을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를 일으킨 기업은 하나같이 사고책임을 회피하며 진상규명보다 보상을 먼저 거론한다. 그러면 한 명당 얼마를 받았나, 받을 것인가로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어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더 많은 보상을 위한 시도로 매도당한다.
회사와의 합의를 거부한 가족들의 진실규명활동이 지금까지 힘겹게 이어졌고, 작년 12월에야 부산지방해양안전심판원은 기업의 관리소홀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선고했다. 침몰의 원인을 밝히는 데만 7년이 걸린 셈이다. 기업은 협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려 노력했고 생업을 포기한 가족들의 절망적인 싸움이 이만큼의 진전을 가져왔다. 그 와중에 유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유가족들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책임져야 할 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만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적었다. 사건의 관련자들이 받아야 할 합당한 형량은 얼마일까? 이것은 재판부나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그래야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많은 참사들에서,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참사들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다. 값싼 노후선의 개조, 비용절감을 위한 불량부품 사용과 문제 방치, 배의 이상징후를 인지했음에도 무리한 운항 강행 등이 스텔라데이지호만의 특별한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사회적 참사에 대한 판결을 더 이상 재판부에만 맡길 수는 없다.
책임보다 자리만 살피는 정부
사실 기업이 회피하는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사고 발생 이후 신속한 대응도, 유가족과의 충분한 정보공유와 설명도,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와 시신의 수습에도 실패했다. 심지어 기업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 유가족의 상처를 달래는 데도 실패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침몰은 뜻밖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참사였다. 즉 인간이 만든 재난이고, 그렇기에 참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왜 기업처럼 책임을 회피할까?
2023년 5월30일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16년부터 2022년 6월까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의 퇴직공직자들 10명 중 8명이 산하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요직을 차지했다고 비판했다. 이러니 서로 뒤를 봐주는 비리가 사라지지 않고, 그 비리의 피해는 시민들이 당한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2022년 해양사고 통계’를 보면 여러 참사들을 겪으면서도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절반 이상의 해양사고가 어선에서 발생하지만 사고발생 수를 등록선박 수로 나눈 사고발생률을 보면 여객선이 가장 높고(21.74%), 화물선(21.68%), 유조선(12.0%) 등의 순이다. 즉 대형사고가 날 수 있는 선박들이 지금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끔찍한 참사에 주목하는 사람은 드물고 유가족의 싸움은 쉽게 잊혀진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했고, 재판은 부산에서 진행되니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시야에 참사가 들어오는 순간 삶은 송두리째 부서질 것이다. 유가족의 요구가 우리의 안전을 힘겹게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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