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늑대 14마리·배 12척, 거대한 절망의 벽 무너뜨리다

한겨레 2024. 2. 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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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상운 | 시인·가족치료상담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1872년에 지정된 세계 최초 국립공원이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미 서북쪽 와이오밍주에 속하는 미국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황 성분이 섞인 노란 돌들이 많다고 해서 옐로스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자연생태계, 야생동물, 산, 강, 초원, 협곡, 샘, 온천, 간헐천을 만끽하고 싶다면 꼭 가야만 하는 공원이다.

아름다운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엎치락뒤치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인간의 침범 때문이었다. 밀렵꾼들의 대량 살상, 자연 파괴자들, 자원 착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자연주의자였던 조지 버드 그리넬은 “1874~1875년의 겨울에만 최소 3천 마리의 버펄로(물소)와 뮬 사슴이 포획됐다”고 말했다. 1894년 몇몇 사람들의 노력으로 ‘공원보호법’이 통과되면서 보존할 수 있게 됐다. 1900년에는 ‘밀렵꾼 기소법’까지 통과됐다.

올 초 서울의 명동에서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오랜 시간 추위에 몸살을 앓았다. 서울시가 29개 노선마다 줄서기 시설물을 설치하자 버스들이 줄줄이 꼬리를 물며 대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은 ‘탁상행정’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끝내 서울시장이 나와서 사과하고 운영을 중단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런 유사한 일이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도 발생했었다.

1914년 엘크(사슴)를 보호하고자 미국 의회는 늑대를 포함한 농업과 가축에 해로운 야생동물을 제거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1926년까지 136마리의 늑대가 살생됐다. 1973년 멸종위기동물법이 통과하기 전까지 늑대는 멸종 위기 첫번째 포유류였다. 최상위 포식자가 멸종하면서 공원의 자연생태계는 균형을 잃고 병들기 시작했다. 인간의 우둔한 개입이 생태계를 교란시켜 혼돈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1990년 연방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고, 1996년에는 14마리의 늑대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도입할 것을 의결했다. 이를 두고 비관적인 사람들은 생태계를 더욱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누군가 무모한 계획이라 했다/ 더 이상 희망이란 없다 했다/ 70년의 노력이 헛되었노라 했다// 14마리의 늑대가/ 황폐함 위에 파괴의 울음을 쌓아/ 자연의 끝을 부를 것이라 했다// 우려憂慮가 현실이 되어/ 사슴 떼가 사라지고 떠나갔다// 그런데, 새싹들이 나무들이 자라고/ 비버들이 뚝을 쌓고// 강줄기가 바뀌었다/ 작은 동물들과 조류들이 모이고/ 황폐한 자연에 다시 생명이 솟았다// 하찮은 소수가 절망의 벽을/ 무너뜨린다// 자연이 스스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라.”(이상운 시 ‘14의 기적’ 전문)

지구 생태계가 절규하는 원인은 인간의 성장 욕구 때문이다. 스페인 환경과학기술연구소 제이슨 히켈 박사는 저서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에서 기후위기와 불평등 원인을 성장만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체의 한계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탈성장을 논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회복 이야기가 던지는 울림이 작지 않다.

지구를 회복함에 있어 꼭 다수가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소수가 지구를 회복하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리라. 하찮은 소수가 절망의 벽을 무너뜨린 예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올바른 정신을 가진 소수여야 한다. 추악한 소수는 지구 생태계를 퇴보시키고 무너뜨리고 만다.

탁상행정으로 인한 폐해는 지천에 널려있다. 국가들이 기후협약조차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지 않는가. 조선 시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겁쟁이들이 이순신 장군의 옷을 벗기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이 장군은 하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12척의 배로 이순신은 일본 수군을 명량에서 대파했다. 세계적 자연공원인 옐로스톤의 회복도 하찮아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 하찮아 보이는 14마리의 멸종위기종 늑대의 도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연생태계가 중병으로 아파하고 있다. 자연생태계라 함은 인류도 포함한다. 그렇다 해도 회생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찮아 보일지라도 자연생태계를 사랑하는 소수를 무시나 모함으로 깎아내리지 말았으면 한다. 그들이 스스로 잘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미개발 지역인데도 절망의 벽 앞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가진 양심 어린 소수라면 더욱 좋겠다. 생태계 회복은 자연 스스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어야 한다. 인류가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법을 제정하고, 인간의 침범을 막는 것이다. 모름지기 ‘14의 기적’이 지구의 각처에서 출현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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