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칼럼] 이러려고 청와대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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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KBS 특별대담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이 법과 규정을 무시함으로써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갖은 무리수를 두면서 청와대를 나온 명분은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비판을 들을 용기, 불편한 국민을 만날 용기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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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백 사과 없이 "아쉽다" 납득할까
민심 동떨어진 구중궁궐 돼 버린 용산
기자회견 피하고 쓴소리 입 막아서야
윤석열 대통령의 KBS 특별대담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전 국민 욕받이였던 클린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만 득 봤다는 말이 나온다. 기자들 여럿이 질문하는 신년 기자회견이었다면 디올 백을 “파우치, 외국회사 그 조그만 백”이라 돌려 묻고 “아쉽다”는 답변을 다소곳이 들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출근길 문답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대통령 입장을 이토록 목 빼고 기다리다 허탈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난감한 자리를 피했지만 일을 키웠다. 언젠가 받을 조사를 미루고 여론을 악화시켰다.
“정치 공작”으로 선을 그은 대담 이후 디올 백은 검찰·국민권익위 조사는커녕 여당에서 말도 못 꺼내는 문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정말 이게 끝이라고 믿는 걸까. 끝이 아닌 걸 알기에 자신의 심복을 차기 주자로 키우려 애쓰는 걸까. 대통령 부인의 금품 수수를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사과도 유감 표명도 아닌 “아쉽다”에 국민은 설득되지 않는다.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닌지, 디올 백을 선물한 최재영 목사에게 “한번 크게 저랑 같이 할 일”하자는 김건희 여사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제2부속실이 있어도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는 발언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마저 안긴다. 제2부속실이 법과 규정에 따라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대통령이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대통령이 법과 규정을 무시함으로써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는 대목에서 검사 시절 뇌물 수사도 그렇게 했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떠올랐다. 그런 성정으로 윤 대통령은 진작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다. 내 자식이, 약혼자가, 친구가 어쩌다 날벼락처럼 죽었는지 납득하고픈 유가족들에게 특별법을 거부하고 지원금을 주겠다는 모욕적인 대책을 발표해서는 안 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유예를 주장하며 경영이 악화될 기업인만 걱정할 게 아니라 하루 3명꼴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 현실에 이입해야 했다.
출근길 문답으로 가장 적극적 소통을 했던 윤 대통령은 이제 불통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관례였던 신년·1주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엄선된’ 패널들이 참석한 ‘국민과의 대화’, 선택받은 언론과의 인터뷰로 대체됐다. 대통령 집무실 앞은 집회·시위 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일관된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을 개정해 금지 근거를 마련했다. 정부에 비판적 기사를 쓴 언론인에 대한 수사와 압수수색은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 할 만큼 빈번하다. 윤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을 입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낸 장면은 상징적이다. 쓴소리하는 입을 틀어막고 귀를 닫겠다는 것이다. 일방 소통하는 정권이 얼마나 더 여론과 멀어지고 독주할지 걱정스럽다.
윤 대통령이 갖은 무리수를 두면서 청와대를 나온 명분은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은 민심을 전하지 못하고 심기를 경호하는 구중궁궐이 돼버렸다. “여러분(백악관 출입기자)들이 이 건물에 있어 이곳을 더 잘 작동하게 만들었다”는 오바마 전 미 대통령처럼 비판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야당의 반대, 언론의 아픈 질문도 결국 국민의 뜻임을 자각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을 재개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를 바란다.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을 무례하게 끌어낸 경호처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디올 백 논란을 돌파하려면 듣기 싫은 모든 질문에 답하고 사과하고 법에 따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비판을 들을 용기, 불편한 국민을 만날 용기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는 없다.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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