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트럼프의 위험한 동맹관
‘복지의 여왕’은 로널드 레이건이 1976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시절 빈곤층이 복지 제도를 악용한다고 공격하며 악명을 떨친 말이다. 비난의 근거가 된 사례 속 흑인 여성이 가공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표현은 사람들 뇌리에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설 것이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국제관계 복지의 여왕’으로 부른다.
미국은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에 이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불개입주의가 강화됐다.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시는 물론이고 조 바이든 집권기에도 동맹에 대한 이해타산적 접근이 유지됐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지난 9일 “나토 회원국들이 동맹 비용을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게 독려할 것”이라고 한 말은 차원이 다르다. 전직 대통령이자 유력 대선 후보가 적국에 동맹국 공격을 부추긴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사실에 기반해 있지 않다. 미국은, 자국이 체결한 많은 동맹 관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나라이다. 폭넓은 동맹 관계는 미국만 가진 자산이다. 다만 그 힘은 미국의 동맹 공약이 믿을 만할 때 커진다. 트럼프의 의도는 목전의 이익이겠지만, 그의 언행으로 국제 질서가 흔들리면 미국이 잃는 게 더 많아진다. 그럼에도 주목할 것은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시각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여론조사들을 보면 나토에 우호적이라는 응답은 절반을 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세대가 내려갈수록 미국인들의 동맹관은 부정적으로 변해간다. 오는 11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흐름이 역전되진 않을 것 같다.
트럼프 발언의 충격은 당장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폴란드·발트3국 같은 러시아 인접국에 미치고 있다. 트럼프의 유럽 내 우적(友敵) 인식은 한반도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된다.
주한미국대사도, 한국 외교부도 누가 미 대통령이 되든 한·미관계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반복한다. 과연 그럴까. 전례 없는 미·중 갈등 속에 북한의 동족·통일 개념 폐기, 흔들리는 동맹 신뢰까지, 한국은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난제들을 떠안고 있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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