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입에 쓴 레드팀은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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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어린 아들이 황제가 되자 간신들이 득세해 바른말 하는 충신들이 쫓겨났고 결국 왕조가 멸망으로 접어드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가 이끄는 분석단에서 KF-21 초기 생산대수를 줄이고 기술 완성도를 더 높인 뒤 생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단장이라는 위치에서 외풍을 막으면서 겪었던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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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어린 아들이 황제가 되자 간신들이 득세해 바른말 하는 충신들이 쫓겨났고 결국 왕조가 멸망으로 접어드는 과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역사가 들려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조직이나 집단이 자극과 비판 없이 지내다 보면 나중에는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극과 비판을 스스로 만들어내서라도 생존 능력을 키우려는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 현재는 '레드팀을 둬야 한다' '예스맨을 멀리하라' '순혈주의를 경계하라' 등으로 표현된다.
지난해 후반에 우리나라의 자랑인 한국형 전투기 KF-21 개발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난산(難産)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쑥쑥 자라고 있는 KF-21 개발의 발걸음을 조금 늦추자고 한 정부기관의 주장에서 비롯됐다. 미국·유럽의 최상위급 방위산업체는 물론 그 밖의 후발주자들도 KF-21의 순조로운 개발 과정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가히 '거칠 것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곳도 아닌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이었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고병성 한국국방연구원 획득사업분석단장은 한창 일할 5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끄는 분석단에서 KF-21 초기 생산대수를 줄이고 기술 완성도를 더 높인 뒤 생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단장이라는 위치에서 외풍을 막으면서 겪었던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전언이다. 합리적인 내부 비판을 통해 다양한 주장이 오가면서 건설적인 합의를 도출해 가는 것이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KF-21 개발을 무사히 최종 단계로 이끌어 가는 길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 전문가의 연구가 '아니면 말고'식 거친 비판을 받으며 폄훼됐다. 이들에게 가해진 비판 가운데 우리나라에 전투기를 더 많이 팔려는 서방 업체의 영향이 있었다는 음모론 비슷한 것도 있었다. 국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한 결과를 무시당하는 혹독한 스트레스는 몸을 망치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었다.
왕조 시대에 현명한 왕의 조건은 듣기 싫어도 충신의 고언을 귀담아듣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로 확대된 덕목이다. 몸에 좋지만 입에 쓴 약을 처방하며 '레드팀' 역할을 자처한 그의 용기와 희생이 잊혀 가고 있다.
[안두원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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