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중과 유예·임대사업자 확대…이헌재의 어깃장

한겨레 2024. 2. 12. 15: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53화 부동산 대란 3: 일관성의 중요성
2004년 8월12일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주최 국제학술대회에서 이헌재 부총리와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자리를 나란히 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2004년 7월27일(화) 9시 국무회의 도중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부동산 문제를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맡아왔는데, 앞으로는 국민경제자문회의로 옮기겠다. 조윤제 보좌관 어디 있나?”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부동산 투기 잡겠다며 수십차례 회의 끝에 10·29 대책을 발표해 이제 겨우 진정되나 싶은데, 한마디 의논도 없이 중간에 장수를 바꾸니 섭섭했다. 그러나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이 선언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윤제 보좌관이 뽑아놓은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 다수가 보수 성향인 점도 걱정이 됐다.

대구에서 ‘헨리 조지 연구회’를 조직해 10년간 부동산 문제를 연구해온 나로서는 기운이 쑥 빠졌다. 2002년 말 ‘헨리 조지 연구회’가 연구성과물로 펴낸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를 노 대통령에게 선물했는데, 대통령은 “아이고, 이렇게 두꺼운 책 못 읽어요”하며 그냥 집무실 서가에 꽂아두었다. 이 책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대통령 동정을 보도할 때 자주 카메라에 잡힌 덕분에 꽤 많이 팔렸다고 들었다. 한국 부동산 문제의 해법이 다 들어 있는 책인데, 정작 제일 중요한 독자가 읽지 않으니 천하의 묘책을 전달할 길이 없었다.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

11월23일(화) 저녁 연세대 상경대학에서 강연했다. 하성근 학장과 이두원 교수가 맞아줬는데, 6시반 최고경제인 과정 강의를 시작할 때 이 교수가 오늘 강의 내용은 비보도라고 밝혔다. 대부분 기업 경영자들인 40~50명 정도 수강생 앞에는 각자 명패가 놓여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수강생이 이헌재 부총리의 골프장 200개 건설 계획과 최근 있었던 3주택 이상 양도세 중과 유예 발언에 관해 물었다. 나는 “골프장 200개는 과하고, 양도세 중과는 1년 전 정부의 약속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부가 약속을 어기면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겠느냐”고 원론적 답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 여러 신문이 부총리와 정책기획위원장 사이 정책 혼선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니, 인터넷언론 이데일리 기자가 강연장 결석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실 이 부총리 발언은 서별관 회의에서 의논하지 않은 개인 의견에 불과했다. 2003년 10·29 대책에서 1년 뒤부터 다주택자 양도세를 중과하니 그 동안 팔라는 신호를 보내놓고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한다면 장차 누가 정부를 신뢰하겠는가.

2004년 10월11일 국회 재경위의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증인으로 출석한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위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12월6일(월) 아침 7시반, 고위 당정청 회의에 홍재형, 이계안, 이헌재, 김병일, 김영주가 참석해 3주택 이상 양도세 중과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못내렸다.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정부 안에 이견이 있으니 해소한 뒤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헌재-이정우 갈등, 힘겨루기라고 한달 가까이 신이 나서 보도하고 있었다. 정부가 시행을 예고한 2005년 1월이 코앞인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도 결론을 미루다니 무책임해 보였다. 이계안 의원이 “양도세를 중과한다 해놓고 유예한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상식 문제다. 결국 장관회의, 총리, 대통령의 조정 노력 끝에 결국 원안대로 중과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괜한 평지풍파였고 사필귀정이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임대사업자에게 각종 세금 혜택을 준 정책이 혹독한 비판을 받은 걸 기억하는가.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는 투기꾼에게 꽃길 깔아주는 정부를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같은 문제가 참여정부에서도 있었다. 2004년 6월24일(목)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김수현 비서관이 전날 아침 경제장관 서별관 간담회에 나 대신 참석해(나는 다른 일정과 겹쳐 불참) 들은 내용을 보고했다. 건설경기 연착륙 방안 중 2호 이상 주택 임대사업자에게 종합토지세,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내용이 있어 반대했더니, 강동석 건교부 장관도 동의하고 김영주 경제수석도 이해했는데 이헌재 부총리 혼자 강하게 감면을 주장했다고 했다. 5호 정도면 몰라도 2호 소유자에게 임대주택 사업자라며 혜택을 주는 건 누가 봐도 문제가 있었다.

10월25일(월) 아침 7시반 부동산세 회의(서별관)에서는 매입임대사업자 범위를 논의했다. 5호, 5년으로 하자는 주장이 다수인데, 이 부총리 혼자 2호를 주장하며 대립했다. 청와대 부동산 정책 새 사령탑을 맡은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5호로 합시다”라고 선을 확실히 그어 정리했다.

2005년 1월7일(금) 5시, 김수현 비서관과 건교부 윤성원 과장(뒤에 국토교통부 차관)이 찾아와 임대사업자 양도세 감면 기준은 10년 보유, 5호 이상인데, 종부세 감면은 10년 보유, 2호 이상으로 다르다고 보고했다. 종부세 기준 2호를 5호로 통일하면 좋겠는데 이 부총리가 강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이 부총리가 주장한 양도세 중과 유예가 좌절된 게 얼마 전 일이고, 종부세 세수는 아직 얼마 안 되니 2호로 타협하자기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경실련 회원들이 2005년 3월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뒷문 앞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 퇴진과 부동산투기 근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가 이 부총리의 부동산 매입 매각 과정에 위장전입 등 불법 사실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이렇듯 이헌재 부총리는 임대사업자 범위를 최대한 넓혀 특혜를 주자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도 비슷한 논리다. 그 뿌리는 ‘건설경기 연착륙’ 론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경제관료들이 쓰던 상투적 수법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에서는 더는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을 이 부총리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관심 없었고 어떻게 해서든 건설경기 살리기에만 몰두했다. 한번은 골프장을 왕창 지어 경기 살리는 방안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보고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노 대통령은 건설 경기부양 같은 소위 인위적 경기부양을 마약처럼 여겨 멀리했다.

이 부총리의 경제철학이 이러니 나와는 물과 기름이었고, 사사건건 불통과 대립이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썼다.

“당시 이정우는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에서 물러나 민간인 신분으로 비상근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나도 대응을 했다. ‘종부세를 좀 강화시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경고한다. 이정우는 ‘9억 이상만 종부세를 물리면 대상이 3만5천명밖에 안 된다. 너무 적다. 대상을 더 늘려야 한다. 양도세도 깎아주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그때 이정우는 민간인 신분으로 부동산 대책을 짜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청와대 말이 엇갈려 나가선 곤란했다. 나는 이정우를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그랬더니 김수현 비서관이 대신 참석했다 (…) 역시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위기를 쏘다’ pp.340~341)

짧은 글 안에 여러 곳이 틀렸다. 나는 당시 정책기획위원장을 그만둔 게 아니라 계속하고 있었다. 정책기획위원장이 민간인 신분인 것은 맞지만, 노 대통령은 대통령 정책특보 직함을 얹어줘 수석회의, 장관회의 등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도록 했다. 나는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서별관 회의에 한번도 빠지지 않았는데, 딱 하루 2004년 6월23일 회의만 김수현 비서관이 대신 참석했다.

마침 그해 스웨덴 경제학자 쉬들랜드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는데, 정부 정책의 생명은 신뢰에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연구 업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도 10·29 대책은 획기적이었으나 그 뒤 부동산 정책 사령탑 교체, 양도세 중과 논란, 종부세 기준 6억-9억 논란 속에 국민 신뢰를 잃고 흔들렸다. 정책은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보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방향이어야 하고, 특히 사람들 심리에 민감한 부동산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했더라면 더 나은 성과가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